결정을 내려야 할 때

2019. 2. 3. 23:59에세이 하루한편


어젯밤, 잠이 들기 전에 온몸에 로션을 바르고 잤다. 피부가 건조해서 습관적으로 벅벅 긁게 돼서다. 잔뜩 발랐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보다 일찍 누웠음에도 바로 잠들었다. 그러다 깬 건 이른 새벽이었다. 방이 건조한 탓인지 팔다리가 가려워서 한두 번 긁던 게 잠이 깰 정도로 북북 긁고야 말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반이 넘어있었다. 어떤 목적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을 시간이었다. 잠결에 창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어서인지 창밖이 궁금했다. 비몽사몽 간에, 창문을 열어 날씨를 확인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스름이 깔린 새벽하늘에 비 냄새가 풍겨왔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내 몸을 한 번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새벽에 일어나 새벽공기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제주도에서 고양이 순무에게 밥을 주던 새벽이 떠올랐다. 5개월이 지났는데도 생각나는 걸 보면 나에겐 특별한 기억이었다. 좋은 기억의 기준이 모두 제주도 여행을 했던 그 한 달이 돼버렸으니. 건물이 낮아 하늘을 더 크고 가까이 볼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생각났다.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불던 날. 다시 그 감정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다시 고민에 빠졌다. 진짜 제주도로 내려가 일 년을 살아볼까. 모아둔 돈도 많이 없는데 내려갔다가 후회하는 거 아닐까. 무엇보다 지금은 쉬엄쉬엄 살 때가 아니라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닐까. 치열하게 살기 싫어서, 사람들의 잣대에 휩쓸리기 싫어서 내려가고 싶은 거지만 결정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이 때가 아니라면 어떡하지. 걱정도 됐다.

매일 좋은 풍경을 보고 좋은 생각을 하고 살면 좋겠다. 아니, 매일은 욕심이니 자주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건, 다양한 삶의 모습을 경험하고 내가 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거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어떤 결정이든 내릴 수 있다. 언제나 마지막일 순간에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면 좋을까. 당장 내려가고 싶다가도 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 뒷걸음질 치는 걸 반복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드는 생각에 어지럽다. 아, 이럴 땐 누가 정답을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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