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랬구나

2019. 2. 1. 23:59에세이 하루한편


바람도 온도도 차가웠지만, 왠지 여름이 생각나는 날씨였다. 냄새도 그렇고 뿌연 하늘색이 초여름 해가 막 지기 전 모습 같았다. 냄새도 달랐다. 확실히 며칠 전과는 달랐다. 따뜻한 기운이 코끝에 맴돌았다. 춥지만 포근한 느낌이었다. 어딘가 고요하기도 했고. 카페에서 글을 쓰고 산책을 하는 길이었다. 눈앞에 뭔가가 흩뿌렸다. 얼굴 앞으로 다가오는 벌레인 줄 알고 손을 휘휘 저어 피했지만 생각해보니 겨울에 큰 벌레는 드물었다. 자세히 보니 하얬다. 눈이었다. 흰 눈이 조금씩, 조금씩 내리더니 비처럼 쏟아졌다. 내 머리 위에, 모자 위에, 패딩 점퍼 위에 앉았다.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을까. 그렇게 계속 올 것만 같던 눈이 그쳤다. 언제 왔냐는 듯이. 생각해보니 올해 첫눈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니 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시간에 밖에 없었다면 맞지 못했을 눈이었다.

신기하게 눈이 오는 날은 유난히 하늘이 고요하다. 침묵하듯이. 눈이 내린 뒤에야 알게 된다. 눈이 내리려고 그렇게 조용했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오랜만에 본 눈도, 눈 내리기 전 본 투명한 하늘도 오늘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운 하늘. 그 모습을 보고 초여름 밤을 떠올린 걸 보면 난 여름을 기다리고 있나 보다. 그때의 냄새와 분위기를 그리워하고 있나 보다. 맑은 빛 하늘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면 내가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는 뜻이겠지.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그 눈을 맞으며 걷지 않았다면, 또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면 못 느꼈을 감정이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도 알게 되지 않을까. 눈이 온 뒤에야 그렇게 조용했구나, 느꼈던 것처럼.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때 내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비로소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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