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에 섞인 숨

2019. 2. 10. 23:58에세이 하루한편

 

 

할머니는 의사가 예상했던 토요일을 넘겼다. 복수와 영양제, 링거는 꼽고 있지만 소변 줄을 빼고 기저귀로 갈았고 미음도 드시기 시작했다. 혈관을 찾기가 어려워 여기저기 쑤시지 않고 겨드랑이 밑쪽에 큰 관을 하나 뚫었다는 것 빼고는 위기가 없었다. 예상보다 잘 이겨내고 계셨다. 살아계셨다. 눈가에 푸르뎅뎅한 멍이나 입술에 피가 배어 나오는 모습이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살아계셨다. 오늘은 나를 세 번 만에 맞추셨다. 저번보다는 확실히 의식이 있는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피가 났냐고 병간호를 해주시는 할머니에게 물으니 잇몸이 헐면서 까진 상처 때문이라고 했다. 미음을 다시 드시기 시작하면서 빼고 있던 틀니를 다시 끼우느라 그렇다고. 뺐다 꼈다 하면 더 안 좋기 때문에 힘들어도 지금 계속 끼는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혈소판이 부족해 한 번 피가 나면 잘 멈추지 않아 계속 피가 스멀스멀 나오는 중이었다. 누군가에게 맞은 것 같은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이 정도면 멍도 많이 빠지고 피도 멈춘 편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잠깐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난 간이침대에 앉아 할머니를 바라봤다. 복수를 빼기 위해 연결한 호스가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가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피와 액체가 뒤섞인 게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가 숨을 내쉴 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빨간색과 주황색. 새빨간 피와 옅은 주황색인 복수. 그 안에 섞인 숨. 그 호스를 보고만 있어도 할머니가 숨 쉬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안심됐다. 사촌 언니와 오빠가 왔다. 사촌 언니가 먼저 오고 삼십 분 뒤에 오빠가 왔다. 사람이 북적대는 걸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웃으셨다. 특히 오빠를 보고선 수고했지, 하며 손을 들어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할머니 저도 오느라 수고했어요, 괜히 옆에서 농담을 건넸지만 말을 건네고 웃기도 하는 모습에 마음이 좋았다. 옆에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시는 할아버지에겐 할아버지가 의사야, 농담도 했다. 그렇게 두 시간 반 동안 할머니 옆에 있다가 병원을 나섰다. 또 올게요, 식사 많이 하셔야 해요. 인사를 하고선.

마음이 한결 나았다. 할머니는 숨을 쉬고 있었다. 할머니는,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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