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과 흰머리 한 가닥

2019. 2. 8. 23:59에세이 하루한편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보냈다. 온종일 여행기를 쓰고 고치고, 사이트에 올리다가 또 고칠 게 생각나면 다시 들어가 고치고. 그렇게 다섯 편의 여행기를 썼다. 해가 떨어질 즈음에 외출을 한 것도 비슷하다. 심부름으로 오이를 사 오고 채식 자장면을 샀다. 오랜만에 자장면을 만들었다. 그릇에 담은 뒤, 면 위에 오이를 송송 썰어 살포시 얹어 면과 오이를 같이 먹었다. 오이를 사러 나갈 때까지만 해도 떡볶이를 먹을까 떡꼬치를 먹을까 고민했으나 신기하게 발걸음이 초록마을로 향했다. 오이하면 짜장면인 건가. 안 먹은지 오래됐으니 먹을 때도 됐지. 저녁을 먹으면서 예능 한 편을 보고 잠시 졸다가 씻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쓴다. 하루에 몇 시간을 노트북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피곤했는지 잠을 잘 잤다. 오늘도 그럴것 같다.

눈꺼풀이 떨린다. 신기하게 양쪽 번갈아 가면서 떨린다. 위도 아래도 아닌 눈꼬리 쪽이 떨린다. 떨리는 게 보일 정도로 심하진 않지만, 눈을 감고 손가락을 가만히 대보면 진동이 느껴진다. 인터넷에 검색했다. 원인은 흔히 생각하는 마그네슘 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글이 많았다. 한 달 이상이 되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일시적인 증상일 수 있으며 원인은 다양하다고 했다. 설명 글을 읽던 중 카페인이라는 단어에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커피를 하루에 한 잔씩 꼭 마셨더랬다. 아인슈페너 한 잔이 댕겨서 카페 가서 마시고, 할머니를 보러 간 병원에서 잠 깨려고 마시고, 집중하려고 편의점에서 2+1을 사다가 마시고. 어제도 여행기를 쓰며 마셨다. 잡았다, 요놈! 왠지 커피 때문인 것 같아 오늘은 마시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내 예상이 맞았는지 떨림이 멈췄다.

이 정도면 커피를 포기할 이유가 넘쳐나니 그만해야겠다. 커피랑 나는 상극인 것 같다. 요 며칠 배도 안 아프고 잘 마셨다 싶더니만 아니었다. 눈꺼풀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 몸에서 신호를 보내니 무시할 수도 없고. 안 먹는다, 안 먹어.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화장실 거울을 보다가 흰머리 하나를 발견한 거다. 바로 뽑아버리려고 했지만 한 가닥이 아까워 가르마를 다르게 타 숨겨두었다. 엄마가 새치 염색할 때 그 한 가닥만 염색해보고 싶어서다. 흰머리만큼 늙음에 대한 충격이 즉각적으로 와 닿는 건 없는 것 같다. 뭐 건강의 이상이나 잘 안 보이는 눈 이런 건 서서히 안 좋아져서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데, 흰머리는 왠지 갑자기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더 충격이다.

꼬불꼬불 흰 머리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하루하루 나이를 먹고 있으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자.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말하니 좀 민망하지만, 진짜 그렇다. 난 아직 젊지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짠한 마음은 숨길 수 없다. 오늘도 그래서 흰머리를 발견한 뒤 떡볶이를 사 먹으려고 했으나 왠지 내일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미뤘다. , 이게 무슨 글이냐 하면 나도 잘 모르겠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읽은 사람의 서글픔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커피야 뭐 내 고집으로 마신 거긴 하지만 눈꺼풀이 이렇게 계속 떨린 적은 없었으니까. 매일 매일 몸과 마음을 가꾸고 날 행복하게 해줄 뭔가를 하나씩 하자. 그게 먹을게 됐든 보는 게 됐든 읽는 게 됐든. 다시 한번 현재를 살자고 생각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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