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만났을 때

2019. 2. 13. 23:56에세이 하루한편

 

주말부터 어제까지,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외출을 했다. 잠깐 외출을 한 게 아니라 최소 두세 시간씩 밖을 돌아다녔다. 한 시간 반 거리인 병원을 왔다 갔다 했고 어제는 오빠와 병원을 다녀온 뒤 가족들 선물을 사러 백화점을 갔다. 병원은 고양시, 집은 서울시. ()를 넘나들며 7시간 넘게 돌아다녔다. 기필코 오늘은 외출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걸 잘 지켰다. 산책도 하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심부름을 하러 슈퍼에 간 것이 전부다. 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집순이인 나는, 하루 외출을 했으면 하루는 쉬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아르바이트하거나 회사에 나가면서 그 규칙은 깨졌지만. 지금은 또다시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꼼짝없이 집에 있었다.

집에 있으니 좋은데,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갈 걸 생각하니까 앞길이 막막하다고. 나이 때문일까. 20대 후반인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엄마는 자꾸만 나이가 많다고 놀린다. 너랑 나 사이에 그런 농담 못 하겠냐고 말하지만, 농담이, 농담이 아닌 것 같다. 엄마의 휴무라 대부분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내 할 일을 하다가도, 쉬다가도 눈치를 보게 된다. 나 뭔가 잘못된 걸까. 이 나이엔 회사를 다녀야 하는 걸까. 이미 불안과 멀어졌다고 생각해도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나를 흔들었다. 나만의 속도로 살고 싶다. 누가 뭐라 해도 천천히 가고 싶다. 너무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적당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번 만큼 만족하며 쓰고 싶다. 아직 그 과정에 있다.

불안함. 모든 원인은 불안이다. 난 아직도 불안의 파도에 휩쓸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숨을 쉬지 못할 때가 있다. 허우적거린다. 오늘도 그랬다. 파도를 피하거나 잠재울 방법밖엔 없다. 그 두 가지 중 난 무엇을 택할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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