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아르바이트 3일 차-벗어날거야

2019. 2. 28. 23:51에세이 하루한편


H는 음악을 한다고 했다. 이태원에 있는 자취방 월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라고 했다. 나를 포함한 아르바이트생 네 명 중 한 명이다. 주로 수레에 책을 싣고 온 뒤 매대에 정리하는 일이었다. 손님들이 찾는 책을 찾아주기도 하고. 그는 이 일이 끝나면 다른 일을 또 단기로 한 달 정도 한 뒤 돈을 모아 밀린 월세를 낼 거라고 했다. 그리고 3개월간 작업실 겸 자취방에서 녹음만 할 예정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 다 같이 간 카레 집에서였다. 그 얘기를 하는 H의 가늘고 작은 눈이 빛나 보였다. 난 밥알을 씹으며 생각했다.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정말 작업을 위해서 살 수도 있구나. 간절하면 그럴 수 있겠구나. 예전에 일하던 데서 음악으로 성공할 거라고 말하고 아르바이트 그만뒀어요, 근데 아직도 하고 있어. 그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내 얘기랑 똑같아서.

밥을 다 먹은 나머지 두 명은 말했다. 아이 어떻게 일 년 만에 성공해요, 멀리 봐요. 멀리.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엄마와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오빠의 직장이 좋다며 운을 띄웠다. 요즘은 4일 일하고 3일 쉬고 3일 일하고 4일 쉬고, 회사가 그런 추세인가 봐. 너무 좋지 않니. 내가 네 오빠한테도 그랬어. 오래 쉬어서 너무 좋다고. 그리곤 덧붙였다. 아빠가 네 얘기했어. 글 쓰고 싶으면 언론사 문화부 쪽 아르바이트도 해보는 게 어떻겠냬. 난 기자 되고 싶은 마음 없는데. 난 무심히 대답했다. 그리고 난 얽매이는 거 싫어. 단기 알바로 바짝 벌고 쓰고 바짝 벌고 쓰고 그럴래. 너 문화부에서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르잖아. 엄마도 모르고. 그러니까 이 얘기는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난 언제까지 아르바이트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회사 생활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지금이 20대 후반이니 곧 서른이 될 텐데, 그때도 지금처럼 살 수 있을까. 곧바로 답을 내릴 수 없는 것들에 휘말렸다. 휘말리기 싫다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에게서 도망치는 수밖엔 없었다. 언제나 현실에 지게 만드는 부모님의 테두리를 벗어나야 했다.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사는 건데 뭘. 사람 사는 모습이 다 똑같을 필요 있나. 멀리 봐요, 멀리. 내가 듣고 싶은 말이 귓가에 울렸다. 낯선 타인에게서 들은 말. 나한테 한 말도 아닌 말이 자꾸만 귓가에 머물렀다. 그래, 그런 거지. 잠시 불안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