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누군가가 대신 노를 저어줬으면 좋겠어

2019. 3. 1. 23:59에세이 하루한편


향수를 뿌렸다. 기분 전환이 필요해서다. 서랍엔 얼마나 됐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향수가 하나 있었다. 문득 나에게도 좋은 향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어 들었다. 칙칙. 허공에 뿌리고 그 아래에 빙그르르 돌기를 두 번. 그제나 지금이나 취향은 비슷한지 진한 장미 향을 맡으니 좀 나았다. 기분의 결이 좀 달라진 느낌이었다. 피곤해서 누워있던 한 시간 전의 분위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옷장에서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었다. 봄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얇아진 외투에 장미 향까지 은은하게 풍기니 걸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미세먼지만 나쁘지 않았다면 훨씬 좋았을 테지만.

B를 만났다. 무성의한 옷차림에 기분이 상했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 버린 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나 조울증 인가 봐, 농담을 건넸다. 그러던 중 눈물이 쏟아졌다. 휴지로 눈을 꾹 눌렀다. 옅은 갈색 휴지 위에 내 눈물이 진하게 자국을 만들었다. B가 휴지를 더 갖다 주었다. 나는 나, 힘들어. 속내를 말해버렸다.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이었다. B는 지금 행복하지 않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행복했냐고 묻자 모르겠다고 답했다. 제주에 갔을 때 행복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이번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행복한 곳에서 살아. 거기에서 살면 되지. 그럼 되는 거지.

배를 타는 상상을 했다. 거대한 바다 위에 나 혼자 타고 있는 조각배가 어디론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가늠이 잘 안 갔다. 상상 속 나는 손으로 물살을 확인한다.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다. 이제 노를 저어 물살을 가를 거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번, 두 번 팔을 저어 볼 거다. 그러니 지금은 준비할 시간. 힘을 기르고 방향을 정할 시간. 눈물을 멈춘다. 젖은 휴지를 뭉쳐 손으로 꾹꾹 누른다. 슬픔과 불행과 걱정이 작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