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해서 그래요

2019. 3. 3. 22:59에세이 하루한편


미리 써 둔 여행기 한 편이 날아갔다. 우도에 쓴 한글 파일을 불러왔다. 여덟 번째 여행기였다. 한라산에 관해서 쓰려고 내용을 모두 지우고 8. 한라산, 까지 적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저장 버튼을 눌렀다.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 몇 개가 떴다. 당황하지 않았으면 되돌리기 버튼을 눌렀을 텐데. 한글 파일을 꺼버렸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짜증이 밀려왔다. 다섯 글자를 쓰고 2000자가 넘는 여행기 한 편을 지운 셈이었다. 방법은 없는 건지 지식인에 찾아봤지만, 유감입니다, 라는 답변이 있었다. 집중이 안 돼서 간 카페였는데 일을 더 만들어버렸다. 혹 떼려다 혹 붙였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절로 나온 말이었다.

유난히 잘 안 써져서 끙끙 앓던 나날이 떠올랐다. 피곤함을 무릅쓰고 카페에 가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커피에 취하지만 않았어도. 돌아오는 주부터는 개강 때문에 아르바이트가 미친 듯이 바빠질 예정이므로 글에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점에서 학생들에게 무겁고 두꺼운 전공 책을 팔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계산대에서 서점 안쪽까지 길게 줄을 선다는 게 사실인지 아닌지 내일 알게 되겠지.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잠에서 깬 모든 시간이 멍하다. 일주일 내내 그렇겠지만. 일하면 멍하고 안 하면 불안하고. 회사는 다니기 싫은데 뭐라도 해야겠고. 남은 시간에 유익한 뭔가를 하고 싶은데 피곤한 몸으로 뭔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뭘 하던 균형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별수 없다. 12일만 더 버티는 수밖에. 앞으로의 나 파이팅이다.         


문제의 콜드브루 라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