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아르바이트 4일 차-저는 앵무새예요

2019. 3. 4. 23:05에세이 하루한편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한 내 글은 선택받지 못했다. 잔돈을 바꾸러 간 은행에서 잠깐 짬을 내어 본 결과였다. , 안됐네. 그래 이렇게 쉽게 될 일이 아니지. 시간이 많았다면 자책과 비관적인 미래를 그리는 데 시간을 썼겠지만, 너무 바빴으므로 그럴 여유가 없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할 때까지 600건 넘는 계산을 했다.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비닐 완전히 뜯으시면 교환 환불 불가하세요, 라는 말이다. 얇은 비닐로 쌓인 책들은 비닐을 다 제거하면 교환과 환불이 안 된다는 뜻이다. 봉투 100원인데 필요하세요? 이 말도 많이 했다. 툭 하고 날 건드리면 툭 나오는 말이었다. 계산할 때마다 꼭 한 번씩 했으니 대략 600번 넘게 한 셈이다. 앵무새가 된 것 같았다. 불가하세요, 이상한 존댓말을 안 쓰고 싶지만, 불가해요, 말을 싹둑 잘라버리면 예의가 없어 보이고 불가합니다, 하면 이상한 것 같고. 그렇게 거슬리는 존댓말을 수백 번 반복하고 책 밑쪽에 도장을 찍고 영수증과 카드를 주고 나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계산대에서 가게 안쪽까지 길게 줄을 선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심지어 계산대당 한 줄씩 섰고, 온종일 그랬다. 처음엔 비싸고 무거운 전공 책들을 카드로 마구 긁으니 재밌었다. 돈 쓰는 거 쉽다. 내가 다 긁어주겠어! 그러다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줄을 보자니 어지러웠다. 점심시간 한 시간을 빼면 앉아있던 시간은 5분이 채 안 됐다. 카드기로 한 계산과 포스기에 잡히는 가격이 자꾸 차이가 나서 애먹었다. 처음엔 17만 원이나 차이가 났다는 걸 듣고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점장님에게 죄송한 마음보다 믿기지 않는 게 더 컸다. 어이가 없었다. 가까스로 가격을 맞춰 준 점장님을 보기가 민망했다. 실수하지 않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러나 계산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이런 요구가 들어오면 난 머리가 잠시 멍해진다. 78,000원을 결제한 뒤 3만 원은 상품권으로 해주시고, 만 원은 현금으로 해주세요. 나머지 28,000원만 카드로 해주시고 만 원 현금영수증 해주세요. 이렇게 복잡한 주문은 처음이었다. 가까스로 해결하긴 했지만, 북새통을 이루는 서점 안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내일도 비슷하게 흘러가겠지. 바코드를 찍고 지우고 카드와 현금을 받고 영수증을 건네주고. 환불을 해주고.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나면 집에 돌아올 시간이 되겠지.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며 보내는 하루가. 예상가능한 내일을 위해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