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이의 일탈기

2019. 3. 20. 23:59에세이 하루한편

 

미세먼지가 나빠서 나가기 싫다는 건 핑계였다. 집에 있고 싶었다. 따져보니 3월엔 하루도 빠짐없이 외출했었다. 어제까지도. 아르바이트가 끝났으니 하루 정도는 쉬고 싶었다. 아침 8시 반에 일어나 시리얼을 먹은 뒤 소화를 시키고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카페에 가서 글을 쓰려고 했으나 미뤄버렸다. 집에서 하지 뭐. 이 말은 믿으면 안 됐지만 모른 척했다. 10시 정도였을까 윗집에서 금복이가 컹컹 짖었다. 금색 닥스훈트인 금복이는 목소리가 점점 굵어지는 것 같다. 짖는 소리가 울릴 정도다. 집 안에 아무도 없는지 사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짖으면서 어디를 치는 건지 마찰음도 들렸다. 둔탁한 것에 쿵쿵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나른하게 잠에 빠지려는데 열과 성을 다해 짖어대는 금복이 때문에 잠에서 깼다. 곧이어 아주머니가 문을 여는 끼익 소리가 났다. 목소리가 들렸다. 금복이는 금세 잠잠해졌다.

여행기를 써야 하는데. 점심을 먹은 뒤에도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빨리 쓰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싶은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커피 우유를 마셔봤지만, 집중도 잘 안 됐다. 딴짓을 좀 더 하다가 낮잠을 졸음이 와서 다시 누웠다. 이번엔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계단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다가 웃고 계단을 쿵쿵 뛰어다녔다. 내 방의 오른쪽 벽면이 바로 현관문과 이어지는 벽이라 소음이 잘 들렸다. 새벽에 신문 배달부의 발소리에도 잠을 깨는 나는 소음에 민감했다. 잠잠해지기를 기다렸지만, 아이들은 멈출 기세 없이 시끄럽게 놀았다. 왜 하필 내가 자려고만 하면 이렇게 시끄러운 거지. 애써 잡생각을 없애고 편안히 눈을 감으려 노력해봐도 자꾸만 미간을 찌푸렸다. 이대론 안 되겠다. 옷을 주섬주섬 껴입고 현관문을 열어 소리가 나는 곳으로 찾아갔다.

계단을 반쯤 올라가자 위층에 어린 남자아이 셋이 현관문 앞에서 놀고 있는 게 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 보였다. 왜 집안에서 안 놀고 밖에서 노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 전에 얘들아, 조금만 조용히 하자. 나는 입술에 검지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아이들은 바로 네. 대답했다. 다시 탁탁탁, 계단을 내려온 뒤 내 방으로 들어왔다.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 가며 내가 이런 말도 하다니, 그제야 내 행동에 놀랐다. 상황이 다 끝나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해달라고 하는 말에 싫은데요, 라고 말했으면 어쩔 뻔했나. 그 상황에서 아이들의 부모님이 나왔다면 뭐라고 했을지 머릿속에 상황을 그렸다. 안녕하세요, 아랫집인데요.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놀아서 조금만 주의해주세요. 그렇게 말했겠지. 애들이 그래도 착하네. 바로 대답할 줄도 알고. 대들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으면 좋았으련만 더 잠은 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짜증만 내고 직접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텐데. 나도 점점 변하는구나.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게 되는구나. 마냥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조금씩 표현하고 있다. 아닌 건 아니라, 말하고 싶다. 가끔은 소리 지르며 싸우고 따져야 할 때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면 너무 세상에 찌들어 버린 걸까. 다음에는 어떤 싫은 소리를 하게 될지 생각한 뒤 여행기 첫 부분을 쓰기 시작했다. 곧바로 인터넷 창을 켜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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