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목련

2019. 3. 26. 23:44에세이 하루한편


날씨가 좋았다. 미세먼지만 잠시 나빴지만, 햇볕이 따스하게 내렸다. 며칠 전의 날씨와는 전혀 다르게 따뜻했다. 청재킷만 걸쳐도 춥지 않았다. 카페를 가는 길가에 있는 나무와 풀을 보았다. 꽃망울이 움트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꽃망울들. 분홍색, 노란색, 목련꽃을 피워낸 나무가 있었다. 오늘 간 카페 한가운데에도, 목련이 피어있었다. 하얀색과 노란색 사이의 빛깔이 예뻤다. 어제 산책을 하며 봤던 나무였는데, 밝을 때 보니 더 반가웠다. 어릴 땐 목련 꽃잎으로 풍선을 불어 놀곤 했는데. 언제 피는지도 다 까먹어버렸네. 두툼한 목련꽃 잎 사이를 손으로 벌린 뒤 입술을 대고 숨을 후, 불어 그 안에 공기를 넣으면 꽃잎은 빵빵하게 불어났다. 풍선처럼. 그게 신기하고 재밌어서 연거푸 숨을 불어댔다.

큰아빠가 죽은 게 목련이 필 즈음이라고 할머니는 말했었다. 설이었나 추석이었나. 할머니가 화곡동에 사실 때였다. 집에 가라고 부추기는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함께 소일거리를 하던 중 들었던 이야기다. 목련이 필 즈음이었어, 그래서 목련만 보면 걔 생각이 나는 거야. 할머니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어딘가를 응시했다. 은색과 하늘색이 섞인 탁한 눈동자가 깊어 보였다. 그 뒤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시 멈췄던 손이 금세 다시 움직였다는 것뿐. 나도 할머니의 행동에 맞춰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떨구고 애써 다른 곳을 쳐다봤다는 것만 기억한다. 할머니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주 먼 곳으로 떠났다 온 사람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와 큰아빠, 모두 3월에 세상을 떠났다. 310일과 23.

그 뒤로 목련만 보면 큰아빠가 생각났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큰아빠. 이젠 할머니까지 생각이 난다. 큰아빠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할머니니까. 오늘따라 길가에 목련이 유난히 많았다. 어떤 나무엔 연두색 몽우리만 살짝 올라왔고 어떤 나무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신기하네. 같은 나무라도 다 다르게 피워내는구나.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 목련을 봤다. 이제 난 3월의 목련을 잊지 못하겠구나. 목련은 3월에 피는 꽃이다. 그때마다 내 그리움도 항상 같이 피어나겠지.

'에세이 하루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동 때문이야  (0) 2019.03.28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0) 2019.03.27
편도처럼 살고 싶은데요  (0) 2019.03.25
그건 사실 거짓말이야  (0) 2019.03.24
관계에도 나이가 있다면  (0) 2019.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