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2019. 3. 27. 23:59에세이 하루한편

 

오전 10시에 면접을 봤다.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어디인지는 추후에 설명하기로 한다). 서점 일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일주일하고 하루가 지났는데 생활패턴은 금세 바뀌었다. 왜 시간이 지날수록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힘이 드는 걸까. 나이가 더 들면 아침잠이 정말 없어지긴 하려나. 8시에 일어났다. 고작 8시에 일어나는 것 가지고 뭐가 힘드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난 힘들다. 덧붙이자면 나도 고등학교 땐 새벽 6시~ 6시 반에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던 몸이다.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고 9시에 집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서점 일을 할 땐 더 일찍 일어났었구나. 근데 왜 이런 거지. 기억력도 이상해졌다.

면접은 가벼운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예전에 하던 일에 대하여 설명해 줄 수 있느냐, 그중 어떤 일이 본인과 제일 잘 맞았느냐, 지금은 뭘 하며 지내느냐, 이곳에 지원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달라, 친구는 많은 편이냐, 친구랑 지낼 땐 본인이 리드하는 편인가 등등. 또 예민하신 편인가요, 예민함을 극복하는 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최근 읽은 책은 뭔가요. 회사를 나와 시계를 보니 10분이 지나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대화를 나눈 셈이었다. 나 잘한 건가, 아님 못 한 건가.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털어놓으니 놀다 왔구먼,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면접을 본 게 아니라 놀다 왔네. 아니야, 엄마 난 구직활동에 힘쓰고 왔다고. 결과는 2주 뒤에 나온다고 했다. 시간이 붕 떠버렸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은 뒤 집 근처 도서관 디지털 자료실에서 여행기를 썼다. 카페는 어제 갔고 이번 달에 지출이 많았으니 도서관을 찾은 거였다. 마침 대출할 책도 있었고. 미리 써둔 여행기는 수정한 뒤 두피디아 사이트에 올리고, 네 번째 여행기 초고를 작성했다. 한 시에 도착해 여섯 시까지 디지털 자료실에 있었다. 엉덩이가 뻐근하고 눈이 피곤했다. 종합 도서실로 가 책 한 권을 반납한 뒤 네 권을 대출했다. 붕 뜨는 시간에 책이나 실컷 봐야지. 아니 여행을 갈까. 여행? 마음이 들떴다. 제주 여행기를 쓰면서 또다시 제주에 가고 싶었다. 또 가냐?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지만 가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막상 일을 오래 할 생각을 하니 여행을 가고 싶어 졌다. 사람 생각이 참 간사하다. 일을 하고 싶어 할 땐 언제고 하자고 마음먹으면 이렇게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진다니. 우유부단한 내 마음을 어디에 둘지 몰라 갈피를 못 잡는 밤이다. 아, 그냥 놀고만 싶다.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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