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때문이야

2019. 3. 28. 23:56에세이 하루한편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세 명이 함께 우동을 먹었다. 오늘 마침 엄마 아빠의 휴무였고 집에는 밥이 없었다. 최근 내가 자주 갔던 우동 집으로 갔다. 여기가 미쉐린에서 뽑힌 우동 집이래. 너무 맛있어서 두 번이나 갔다가 오늘 가면 세 번째야. 메뉴를 보여주며 내가 말했다. 두 시간 뒤 다 먹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걸. 어쨌든 우동 가게에 도착한 셋은 10분 정도를 기다렸다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새우 우동 두 개랑 닭 하나 주세요. 내가 주문을 했다. 냉 우동 맞으시죠? 나는 네, 대답했지만 엄마 아빠는 아유, 차가운 건 안 먹지. 따뜻한 걸 먹어야지, 하며 다시 메뉴판을 뒤적거렸다. 여긴 냉 우동이 맛있어. 내가 말했지만, 우동을 차갑게 먹는다는 게 용납이 안 되는지 따뜻한 우동 두 개로 메뉴를 바꿨다. 난 그대로 새우 냉 우동을 시켰다.

얼마나 맛있어서 사람이 미어터지는지 한 번 먹어보자. 아빠는 면발을 후후 불어 식힌 뒤 후루룩 빨아드렸다. 몇 번 더 젓가락질하더니 말했다. 에이, 5점 만점에 0.5점이다. ? 그렇게 맛이 없어? 난 되물었지만, 아빠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빠를 바라보는 내 표정이 안 좋았는지 표현의 자유는 있는 거잖아. 덧붙였다. 엄마는 다 먹지도 않았으면서 배가 안 차, 말하더니 단무지 좀 더 달라고 하자. 튀김은 왜 이렇게 커 또. 등의 말을 쏟아냈다. 여긴 냉 우동이 유명해. 이거 한 젓가락만 먹어봐. 나는 내가 먹는 우동 그릇을 가리켰다. 아빠는 성화에 못 이겨 한 젓가락을 했지만 엄마는 먹지 않았다. 아유, 5천원주면 먹을 수 있는 우동을 만 원씩이나 주고 먹어? 난 혹시 가게 직원이 듣진 않았을까 주위를 살피기 바빴다. 종종걸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민망한 건 둘째 치고 우리가 이렇게 안 맞았나, 어이가 없었다.

내가 뭘 먹으러 가자고 하면 이렇게 맛이 없다고 격한 반응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이젠 엄마 아빠랑 입맛까지 세대 차이가 나는 건가. 뭐지 이거. 그래, 입맛은 달라질 수 있다. 맛이 없다고 면박을 주는 것까지도 괜찮다. 안 괜찮은 건 그런 말을 하는 엄마 아빠가 오늘따라 너무 늙어 보였다는 점이다. 언제 이렇게 늙어버린 거지. 집에서만 보던 것과 달랐다. 환한 햇빛 아래서 보니 빠진 머리는 휑하고 기미는 도드라져 보이고 옷차림은 낡고. 사람들 틈에 섞여 있으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러서 누군가는 자라고 누군가는 늙는 걸까. 잠깐 내 일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엄마 아빠는 이만큼 더 늙어 있겠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됐네, 가끔 하던 농담도 오늘은 하지 못했다.

교보문고에 들렀다 가겠다며 엄마 아빠를 먼저 보냈다. 엄마는 내 옷매무새를 만지더니 그래, 너 우동만 먹으러 다녀서 살이 이렇게 빠진 거 아니야? 조심히 잘 갔다 와. 차 조심하고. 내 엉덩이를 툭툭 쳤다. 무슨 유학 보내는 줄 알겠네. 아빠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등을 돌려 서점에 가는 길에 생각했다. 지금처럼만 맛있는 거 있으면 같이 먹으러 가고 좋은 거 있으면 보러 가고. 예쁜 거 있음 구경 가고. 그렇게 지내면 좋겠다고. 우동 하나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되네. 오늘 내 감정 기복의 원인은 다 우동 때문이다.

문제의 우동. 전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