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1. 23:47ㆍ에세이 하루한편
시간은 나를 뒤에 두지 않고 마구 달려간다. 그래, 너는 너대로 가라. 난 나대로 갈 테니.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던 나에게 시간은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벌써 한 달이 지났지, 할머니 말이야. 맞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 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가족들은 각자의 생활을 하는 중이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두어 번 손수건을 흠뻑 적시도록 우시더니 요즘은 괜찮다. 아빠도 고모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 엄마도 오빠도. 바쁘게 살고 있으니 슬플 틈이 없어 보인다. 나는 ‘그럭저럭’ 축에 낀다. 4월 10일엔 딱 한 달이 되는 날이란 걸 의식하고 있었지만 이제야 글을 쓰는 걸 보니 꽤 괜찮은 것 같다. 얼마나 괜찮냐면 인생 참 짧다고 느꼈으면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하기에도 빠르게 스치는 게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면서 또다시 몇 가지를 두고 저울질하는 요즘이다.
약 2주 전에 지원한 회사에선 연락이 없다. 오늘은 버팀목 전세 자금 대출을 알아보러 은행에 다녀왔다. 세대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부터 걸려 골치가 아프다. 또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데 시간을 썼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썼다. 진희는 야물딱져서 잘 살 거야. 할머니는 항상 날 보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안 그럴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할머니. 나는 잘살고 있어요. 아니, 잘살고 있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예전과 비슷하게 살 수 있게 됐어요. 친구들도 만나고 예전처럼 웃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사고 싶었던 시계도 샀어요. 시간이 빠르다는 말은 너무 지겨운데 지겨운 것만큼 솔직한 게 또 어디 있겠어요. 그렇죠? 시간이 참 빨라요. 한 달이 우습게 지나갔어요. 이렇게 쓰는데 눈물이 안 나는 걸 보니 정말 괜찮아졌나 봐요. 내일은 오늘보다 야물딱지게 살게요, 할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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