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테이블야자

2019. 4. 10. 23:53에세이 하루한편


원룸에서 키울 거고요, 공기 정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선물용 식물을 사기 위해 꽃가게에 들렀다. 주인은 집에 해가 잘 드는지, 통풍은 어떤지 물었다. 해도 잘 들고 바람도 잘 들어요. 통풍이 잘된다고? 원룸인데 그럴 리가 없다는 식의 눈빛을 보내는 주인은 말했다. 왜냐하면 이런 애들은 바람이 잘 안 통하면 바로 죽어버려요. 바로 앞에 식물을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이름이 익숙지 않아 곧바로 까먹어버렸지만. 그럼 키우기 쉬운 거로 알려주세요. 해가 잘 든다고 하니까주인은 몇 가지를 추천해줬다. 산세베리아나 스투키도 좋고, 얘는 미세먼지 먹는다고 뉴스에 나왔고, 아예 걸어서 키울 수 있는 것도 있어요. 주인은 가게 안쪽에 있는 하얀 화분을 가리켰다. 파마머리를 한 것처럼 잎이 꼬불꼬불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둘러봤다. 걔는 만 팔천 원. 흙에 파를 거꾸로 심어놓은 것 같은 모양을 한 식물의 가격을 물어봤다.

작은 화분에 담긴 건 없을까요? 그러면 밖에도 많으니까 이리로 오세요. 문밖 시멘트 인도 위에 두 줄로 나란히 늘어선 식물들이 보였다. 내가 이건 이름이 뭐냐, 가격은 얼마냐, 물어보는 것들은 모두 방 안에서 못 키우는 종이라 한참을 아, 그래요, 그렇구나. 대답만 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이름은 테이블야자라고 했다. 줄기도 길쭉, 잎도 길쭉하다. 이거 꺼내서 봐도 될까요? 주인은 화분을 들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자세히 보니 먼저 자라난 줄기는 키가 30cm 정도로 곧게 뻗어있고 잎이 깃꼴로 엇갈리게 나 있다. 그리고 밑에 10cm 정도 줄기가 또 자라는 중이다. 너는 참 곧구나, 형형색색 꽃을 피우고 있는 다른 식물들보다 정직해보였다. 이거로 할게요. 노란 비닐봉투에 담긴 테이블야자의 얇은 잎은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하늘하늘 흔들렸다. 계산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마치 까르르 웃어서 몸이 떨리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책상위에서 올려놓고 키운다 하여 탁상야자, 테이블야자라고 불린다고 한다. 주로 아열대 지방에 서식하며 실내에서도 잘 자란단다. 꼭 내 방에 둘 식물을 산 것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책상에서 얼마나 많이들 키웠으면 테이블야자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금방이라도 자라날 것 같은 초록의 줄기와 잎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처럼만 곧게 자라라. 나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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