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은 평온

2019. 4. 13. 23:24에세이 하루한편


집에서 5분 거리인 꽃집에 갔다. 내가 돌보고 있는 식물 크로톤에 작은 흰 벌레들이 너무 많이 꼬였기 때문이다. 개미의 5분의 1 정도 될 만큼 작은 벌레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고 흙 위를 슬금슬금 기어 다니는 벌레를 보고 있자니 온몸이 근지러웠다. 우연히 어떤 꽃의 씨앗을 받고 잠깐 화분에 올려둔 이후부터였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해충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 꽃집 주인에게 벌레를 보여주고 싶어 화분을 들고 갔다. 신기하게 벌레들은 밖으로 나오니 흙 안으로 파고들어 몸을 숨겼다. 움직임 때문인 걸까. , 이것들 머리 쓰네. 꽃집 직원은 벌레가 꼬인다는 내 말을 듣자 그럼 약을 뿌리셔야죠, 하고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가게 안에 있는 다른 식물들에 옮길 수 있어요, 말하더니 나를 밖으로 나가게끔 유도했다.

주인 손에는 해충 약이 들려있었다. 이런 벌레가 꼬였는데요. 흙 속으로 파고드는 벌레 탓에 주황색 플라스틱 화분을 이리저리 주물렀더니 흙은 네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주인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약을 뿌리면 된다고 했다. 그리곤 덧붙였다. 건조한데 두셨나 보다. 영양이 없어 보여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약 뿌리시는 게 시급해요. 약 먼저 뿌리시고 새로운 흙 깔아주시면 좋죠. 나는 내 화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약 드려요, 말아요? 주인은 나에게 재촉하며 묻더니 사겠다는 대답을 듣고 나자 아스팔트 인도 위에 해충 약을 두었다. 뭐야, 내 손에 쥐여주면 뭐가 덧나나. 벌레가 꼬이는 식물을 키우는 주인이라는 이유로 나까지 기피 대상이 되어 버린듯한 느낌이었다. . 저 벌레 아니거든요. 유난스럽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인도 위 정렬된 식물을 구경하고 분갈이에 대해 질문도 했다. 결국 배양토도 샀다.

주인은 흙의 윗부분을 근처 화단에 덜어내고 새로운 흙을 깔아주라고 했다. 분갈이도 해주면 좋다고 했다. 더 큰 화분은 없었으므로 집에 있는 것 중 비슷한 크기의 화분을 찾아 옮겼다. 벌레는 잊고 새로운 화분에서 새로운 흙 덮고 살라는 마음으로. 엄마, 얘 영양이 없어 보인대. 신문지를 깔고 흙을 덜어내며 엄마에게 말했다. 주인 닮아서 그런가 보다. , 나 영양 있는데. 주인을 닮아 그렇게 비쩍 말랐나 보지. 새로운 흙 깔아주면 괜찮아지겠지. 오랜만에 베란다에서 약을 뿌리고 햇빛도 쐐주었다. 항상 내 방 피아노 위나 책상 위에만 두다 보니 햇빛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너도 오랜만이겠구나. 이제 날도 따뜻해졌으니까 자주 쐐줄게. 흙냄새를 맡으니 내 마음도 편해졌다. 시원한 바람 따라 흙냄새가 풍기는 오후. 평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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