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의 꽃말은

2019. 5. 6. 23:30에세이 하루한편


조화를 좀 사려고 하는데요. 꽃집에 들렀다.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사려는 사람들 속에서 조화를 찾는 건 우리뿐이었다. 묘지 옆에 꽂아 둘 건데 어떤 게 좋을까요? 사장님은 어디선가 분홍색 무궁화 한 다발을 가져왔다. 길쭉한 잎 두 개도. 꼭 산세비에리아 잎 같았다. 다른 건 없어요? , 지금은 이것밖엔 없어요. 조화 카네이션은 비누 꽃이니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비가 오면 녹아버릴 테니까. 그럼 그걸로 주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조그만 팻말까지 고정해 정성스레 포장했다. 분홍색 꽃에 보라색 리본까지 다니 그럴듯한 꽃다발이 됐다. 카네이션이면 더 좋았겠지만 볼수록 괜찮았다. 할머니에게 가져 갈꽃이었다.

할머니의 산소가 있는 파주로 향했다. 오빠가 운전을 한 차에 할아버지와 아빠, 엄마와 내가 탔다. 할머니가 손자가 운전하는 차 타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차 안에선 그리움이 묻어나는 농담이 오갔다. 분위기가 무겁거나 슬픈 기색을 비치는 게 아닌 나들이를 하러 가는 느낌이었다. 돗자리와 간식거리를 차에 실었다. 모자도 하나씩 챙겼다. 파주시 법원읍까지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리고 꼬부랑길을 20분 정도 들어가야 했다. 일 차선 도로인 시골길을 뒤뚱거리며 올라갔다. 바퀴가 움직이는 길을 따라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났다. 창밖의 풍경이 점점 초록색으로 바뀌자 어느덧 도착이었다.

햇볕은 따스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산 입구엔 예쁜 철쭉이 피어있었고 사방엔 나무가 울창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여느 때처럼 고즈넉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우리는 할머니 산소 앞에 나란히 서 잠깐 묵념한 뒤 기도를 드렸다. 누구도 울지 않았다. 할머니, 저 왔어요. 벌써 두 달이 지났네요. 잘 지내시죠. 묘지 위 인조 잔디가 자란 게 눈에 띄었다. 시간이 지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꽃다발을 묘지 옆에 꽂아두었다. 바람에 날려도 움직이지 않고 비가와도 쓰러지지 않게 흙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일편단심. 할머니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전하고 왔다. 이 말이 우스워질 때가 오더라도. 당신의 죽음과 당신이 베푼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오게 될 그 날까지 잘살고 있겠노라 약속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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