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덕분이야

2019. 5. 8. 23:52에세이 하루한편

카네이션 있어요약국 앞 주차되어있는 트럭엔 다양한 꽃이 있었다. 여기 있지. 꽃 아저씨는 나에게 트럭 뒤쪽, 분홍색 쇼핑백에 들어있는 카네이션을 가리켰다. 그 앞에서 망설이고 있자 아저씨는 말했다. 꽃 더 핀 거 찾아요? 이쪽으로 와 봐요. 아가씨한테는 특별히 더 좋은 걸 줘야겠구먼. 아저씨는 약국 문턱 모퉁이에 놓인 상자로 날 이끌었다. 상자 안에는 8개 정도 돼 보이는 카네이션 화분이 줄지어 있었다. 아무나 주는 게 아닌데. 내 특별히 보여준다, 이 봐라.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아유, 감사합니다. 내가 맞장구쳤다. 빨갛고 탐스러운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두 개 주세요.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를 위한 카네이션이다. 두 손에 꽃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작년처럼 용돈은 못 드리지만, 꽃 선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엄마, 선물 사 왔어.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던 엄마는 꽃을 보더니 이 비싼 걸 사 왔냐며 활짝 웃었다. 너무 예쁘다. 이만 원은 줬겠다, . 아니야. 그렇게 안 비싸. 난 말했다.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엔 돈다발 선물해줄 게 엄마. 그리고 일단 여기다 둘게. 베란다에 있는 크로톤 옆에 카네이션을 뒀다. 아빠에겐 사진을 찍어 문자로 인사를 대신했다. 저녁땐 할아버지를 찾아뵈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이번엔 카네이션이지만 다음엔 용돈 드릴 테니까 그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만 사세요. 내가 오래 살아서 뭐 하냐. 너희 고생만 시키지. 그래도 오래 건강히 사셔요. 할아버지는 멋쩍은 듯 웃으며 괜히 소파 위에 있는 물건을 들췄다. 돈은 언제 벌려고 그래. 벌어야죠. 너무 돈, 돈 할 거 없어. 지금도 충분해.

생화 카네이션을 사는 건 처음이었다. 오늘이 아니었으면 카네이션이 이렇게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인 줄 몰랐을 거다.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5월이 되면 흔하게 보이는 꽃이지만. 선물할 수 있어서,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코끝에 맴도는 카네이션의 향기처럼 덕분에 은은하게 기쁨이 피어났던 하루였다. 모두 카네이션 덕분이다.        



'에세이 하루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약이 준 두 가지 깨달음  (0) 2019.05.12
의지가 없네요, 대기 1번입니다  (0) 2019.05.11
후두염은 처음인 사람의 깨달음  (0) 2019.05.07
무궁화의 꽃말은  (0) 2019.05.06
차근차근, 천천히  (0) 2019.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