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데, 비까지 오잖아요

2019. 5. 19. 23:53에세이 하루한편

  

비 오는 일요일은 한없이 늘어지고 싶은 내 마음을 부추긴다. 주말의 끝인 데다 비까지 오는 날이니. 그래서 더 게으르고 동작이 굼떠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오늘은 일요일이잖아. 그것도 비 오는 일요일. 스스로 다독인다. 아니, 타협하는 건가. 책을 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김금희 작가의 짧은 소설집인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침 내가 듣는 수업이 짧은 소설 쓰기 수업이었으니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19편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었다. 어떤 부분은 빠르게 읽을 수 있었지만, 또 다른 부분은 한참을 들여다보고 다시 읽고 또다시 읽었다. 7페이지 만에 끝나는 소설도 있었는데 당황스러움에 끝난 건가 싶어 책장을 넘겼다가 다른 소설의 제목이 적힌 걸 보고선 실감했다.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 필사를 해보기도 했다. A4 2장이었다. 이 안에 많은 걸 꾹꾹 눌러 담았네. 신기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짧은 소설은 예전에 읽었던 앤드루 포터의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구멍이다. 그때 처음으로 분량에 상관없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여운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 소리가 나오는 글이었으니. 책을 계속 읽으며 생각했다.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 수업 시간에 배운 소설의 3요소와 구성의 3요소를 떠올려보며 다시 읽었다. , 나는 뭐에 관해서 쓰지. 생각하는 가운데 졸음이 밀려왔다. 교회에 다녀온 뒤 늦게 먹은 점심 약 때문이었다. 뭘 쓰지. 할머니와 내 이야기를 쓸까 아니면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것도 아니면 친구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걸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내야 하지. 고민을 하다 잠들었다. 이미 내 몸은 매트리스 위에 누워있었다. 난 지금 생각하기 위해 누운 거야. 눈을 잠시 감은 건 생각에 집중하기 위해서야. 난 고민 중이다. 구상 중이다. 구상. 구상을 해보자. 구상을……. 여기까지 기억난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647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보고 깼다. 저녁을 먹고 청소를 하고 오이지를 담그는 엄마를 도와주고 자잘한 집안일을 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흘렀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엔 뭘 쓰지, 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호기롭게 신춘문예까지 접수했던, 습작을 도대체 어떻게 시작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렵다, 어려워. 창문 밖에는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습도가 높은 공기가 느껴졌다. 정리가 안 된 채 둥둥 떠다니는 생각이 끝이 없었다.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떠도는 탓에 정신이 없었다. 생각들아, 오늘은 일찍 자는 게 좋겠어. 여기까지 하고 내일 하도록 하자. ? 오늘은 일요일이잖아. 그것도 비 오는 일요일. 어설픈 핑계를 대고야 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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