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세계

2019. 6. 4. 23:51에세이 하루한편

난 하나에 빠지면 오래가는 편이다. 채식하기로 결심하기 전에는 쌀국수에 꽂혀서 일주일에 두 번,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먹어야 했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간 적도 있다. 하나의 음식을 계속 먹는 거다. 하나의 메뉴를 여러 가게에서 먹어보는 식이고, 특정 가게가 좋으면 계속 시간을 내서 어떻게든 갈 일을 만드는 식이었다. 메뉴는 다양하다. 봉골레 파스타, 냉 우동, 말차라테, 아인 슈페너, 짜이 밀크티 거쳐 지금은 흑당버블티에 정착했다. 우연히 먹었던 흑당버블티의 맛 때문이었다. 버블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어느샌가 쫄깃쫄깃한 타피오카 펄의 식감에, 진한 단맛에 매료됐다. 막 만든 음료를 처음 먹었을 때 느껴지는 따뜻한 단맛이 좋았다. 그래서 요즘은 어딜 가든 흑당버블티를 먹는다. 나도 모르게 찾고 있었던 거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영화, , 물건, 사람, 가치관도 그렇다. 좋아하는 영화는 최소 세 번씩 보며 원작이 있다면 원작을 읽는다. 좋아하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몇 달째 듣는다. 영화 속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에 대해 찾아보고 필모그래피를 살핀다. 무언가, 누군가에게 집중한다. 가끔은 그 누군가가 가수가 될 때도 있고 외국 배우가 될 때도 있다. 또는 영화감독이 될 때도 있으며 작가가 될 때도 있다. 에코백과 텀블러, 미니멀 라이프와 채식, 환경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일상이 무료하기 때문에 내 삶에 활력을 더해줄 무언가가 필요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매일은 똑같고 내일도 비슷하게 흘러갈 거니까. 나는 그럼 뭔가에 빠져있을래. 그럼 시간도 잘 가고 덜 심심하니까. 이런 마음인 것 같다. 아니면 자극이 필요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외로워서 일지도 모른다. 나만의 프로젝트 만들기로 주의를 환기하고 외로울 틈을 주지 않으려 하는 걸 수도 있고. 나를 빠지게 만든 무언가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게 아니라 나를 매료시킬 무언가를 내가 직접 찾아 나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땐 이상하다. 내가 애잔하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스친다. 그래도 난 멈출 수 없다. 내 관심을 끄는 무언가, 나를 매료시킬 무언가를 찾는 것을. 그래야지만 마음이 편하니까. 그래서 난 오늘도 흑당버블티를 마셨으며 몇 달째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는 음악을 들었다. 좋아하는 영화의 원작을 읽고 있으며 그 영화 속 배우의 사진을 찾아봤다. 매혹의 세계. 현실보단 매혹의 세계에 있는 시간을 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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