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과 글쓰기

2019. 6. 6. 23:57에세이 하루한편

 

목요일 아침마다 부산스레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현충일이라 소설 수업은 한 주 휴강이었다. 창문을 통해 본 하늘은 먹색이었고 바람을 타고 비 냄새가 났다. 외출계획이 없으니 오늘은 집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잘 안됐다. 글은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방 안에 틀어박혀 써야하는데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필요할 때마다 나를 부르고 찾았고 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글을 써야 하는데. 뭔가를 조용히 떠올리고 골똘히 파고들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방을 찾아보다가 여행기를 올리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고. 저녁을 먹고 엄마를 도와주다 또다시 방을 찾아봤다. 빨리 감기 한 것처럼 오전에서 밤이 금방 찾아왔다. 시간을 흐지부지 쓰는 게 아까웠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 느끼는 게 없는 하루였다. 글다운 글을 쓰지 못한 하루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하루다.

소설 수업이라도 들었으면 하루가 좀 더 나았을 텐데. 더 재밌었을 텐데. 글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한 자라도 쓰려고 마음을 다잡았을 텐데. 이미 놓아버린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집중이 흐트러져 저 멀리 도망쳐버렸다.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쓰지 못해서 괴롭고 아무것도 써내지 못해서 괴로웠다. 모래를 잡으려 두 손으로 움켜쥐어도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생각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 가둘 수가 없었다. 어지러운 나날이다. 요즈음 날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건 내가 내 삶을 살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활동하며 살고 싶다. 찰나일지라도 살아있다는 걸 자주 느끼고 싶다. 소설 수업을 듣고 나서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때를. 최근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생생히 감지했던 순간이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글을 쓰는 나.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모습이다. 좁은 방 한 칸일지라도 조용히 읽고 생각하며 쓰고 싶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느낀 하루였다. 하루빨리 나, 공간 그리고 글쓰기가 잘 어우러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보금자리를 찾게 해달라고, 어떻게든 살아가 볼 테니 나만의 안전한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삶과 글쓰기는 너무 가까워서 그 두 개를 연관 짓지 않으면 가짜가 되어버리니, 얼른 글쓰기 안에 내 삶을 넣어달라고 애원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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