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2019. 6. 2. 23:52에세이 하루한편

  

엄마와 함께 교회에 갔다. 오랜만에 단둘이 외식을 하고 음료도 사 먹었다. 카페 바깥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근처 공원에선 작은 분수가 물을 뿜어대고 있었고 따로 겉옷을 입지 않아도 될 만큼 더운 날씨였다. 햇볕을 쬐며 거리의 사람들을 보고 엄마의 말을 듣고, 길가에 꽃과 나무를 봤다. 나른한 오후였다. 엄마와의 나들이는 부러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와선 청소를 하다가 온종일 책만 읽으려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잡생각이 들어서다. 그럼 무얼 할까. 생각을 죽이는 데엔 핸드폰을 하는 게 효과적이었다. 별 관심 없는 기사나 유튜브 영상을 봤다. 내가 하려던 건 이게 아닌데.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멈출 순 없었다. 저녁을 먹고 또다시 핸드폰을 붙들다가 노트북을 켜 조금 더 큰 화면으로 눈앞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동물들을 봤다. 뻐근해지는 눈을 쉴 새도 없이 밤이 됐다.

월요일을 앞둔 밤 11. 모두 자는지 오랜만에 주변이 조용하다. 하루를 돌아봤다. 불필요한 것들로 시간을 보내버렸다. 불필요한 말을 하고 불필요한 농담을 던지고 불필요한 인터넷 서핑을 하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해서 대화를 늘린다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걸 막고 싶어서 농담을 건넨다거나. 그런 식이었다. 그리곤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 관심 없는 것들을 눈에 담고 귀로 들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은 뿌리가 없고 끝이 없으니까. 시계를 본 뒤 그래도 글은 써야지, 하며 하늘색 바탕에 흰 글씨가 적힌 한글 프로그램을 눌렀다. 매일 눌러대던 아이콘이지만 오늘따라 누르기가 어려웠다. 빈 화면에 무엇을 쓸까 생각했다. 어제 하루 쓰지 않았다고 글 쓰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리곤 적는 중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 없었던 하루였다고. 머리가 복잡해지는 게 싫어 이리저리 숨기만 했던 날이었다고. 어지러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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