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

2019. 6. 3. 23:42에세이 하루한편

 

그녀는 이틀 전 저녁, 그에게 잠시 시간을 갖자는 말을 건넸다. 공원을 산책하는 도중이었다. 오랜 연애에 권태를 느낀 그녀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해심이 깊은 그는 그 순간까지 그녀를 이해했다. 붙잡거나 한 번만 더 생각해달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거나 하지 않았고 그녀가 말하는 모든 걸 이해하려는 듯 그럴 수 있지, 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말은 그의 입에 밴 말이었다. 그럴 수 있지. 평상시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농담이었고 그날도 농담과 진담을 오갔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가끔 울었고 많이 웃었다. 그 영화는 같이 보자. 그가 말했다. 곧 개봉하는 영화를 같이 보기로 했던 약속을 말하는 거였다.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녀가 말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계획해둔 여행이 많았다. 그녀는 덧붙였다. 실감 나지? 그는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답변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나 연락은 해도 돼. 그가 말했지만, 그녀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몰라, 대답을 피했다. 그녀의 집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마지막 인사인지 짧은 부재에 대한 인사인지 모를 어정쩡한 몸짓을 건넨 뒤 그녀는 눈물을 닦았다. 그들은 갑작스레 서로의 삶에서 각자가 빠져나가 혼자가 됐음을 실감했고 서로의 부재를 느꼈다. 속수무책으로. 이틀 뒤, 그는 그들이 서로 바꾼 물건을 교환하자는 핑계를 대고 그녀의 집 근처로 찾아갔다. 그녀는 그의 전화를 받고 돌려줄 물건과 음료수를 챙겼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영화를 예매했다며 보러 가자고 말했고 그녀는 너 선수지, 핀잔 섞인 농담을 건네며 그의 말을 따랐다. 버스 안에서 그들은 서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바보 같았는지를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이런 경우가 다 있냐며, 우리는 참 이상한 관계라고 말한 뒤 웃었다. 이해 불가의 관계야. 권태가 오다가도 없으면 허전하고 갈피를 못 잡고. 그러다가 또 권태를 느끼고. 이 모든 게 웃기다가 슬프고 또다시 웃기고.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난 뒤 그가 우리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사이좋게 지내는 거지. 그녀가 대답했다. 이틀 동안 있었던 서로의 부재가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그와 그녀는 언제나처럼 서로를 향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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