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하기②_선택과 집중은 무슨

2019. 6. 8. 23:54에세이 하루한편


같은 가격에 애완동물이 가능한 집을 알아봤다. 하루빨리 고양이 집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가 어려워서다.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고! 마음은 고양이 세 글자를 외치고 있었다. 본가에선 도저히 키울 수가 없으니 맨날 동영상만 들여다보기 바빴으니. 얼마나 서글픈지 몰랐다. 그래, 이왕 독립하게 되면 고양이와 안 살 수가 없지. 내 꿈 중 하나가 고양이 집사인걸. 애완동물이 가능한 집을 몇 개 찾아보고 부동산에 연락했다. 애완동물 금지 조약은 없는 방이라고 했다. 옳다구나! 난 같은 조건으로 방을 몇 개를 보고 싶다고 했고 약속을 미리 잡았다. 약속 장소 앞에 세워둔 차를 탔다. 곱상하게 생긴 젊은 남자와 금목걸이를 차고 있는 덜 젊은 남자가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차 안에선 엠씨 더 맥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젊은 남자는 내 또래처럼 보였다. 둘 다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약 한 시간 동안 여섯 군데를 봤다. 첫 번째 방은 고서적으로 가득 찬 방이었다. 이분 취향 독특하시네. 젊은 남자가 말했다. 천장에는 국기가 그려진 천 두 개가 연처럼 매달려있었고 책장에는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고서적이 빽빽이 꽂혀있었다. 고동색 낡은 책장도 그랬다. 해리포터에서 나올만한 마법 서적처럼 보이는 신기한 책들이 보였다. 침대 옆 벽에는 포스터처럼 보이는 그림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있었다. 원래 못 박으면 안 되는데. 못을 많이 박았네요.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세입자의 존재를 의심하듯 말했다. 이국적인 분위기에 끌렸던 걸까 좁았지만 괜찮아 보였다. 고양이 화장실과 캣타워, 빨래 건조대까지 놓으면 꽉 찰 방이었지만. 애완동물을 확실히 키워도 되는 방이었고 역과 제일 가까웠다. 내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집 근처 철공소와 바이크 매장이 있었다. 주말이라 모두 조용했지만, 평일엔 어떨지 몰랐다. 다시 한번 동네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다른 집도 살펴봤다. 두세 번째 방은 무난했고 네 번째 방은 이상했다. 세탁기와 주방, 화장실이 붙어있는 방이었다. 주방과 화장실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화장실 문을 불투명유리로 급하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난 젊은 남자에게 이 건물은 구조가 똑같은지 물었고 그럼 안 봐도 되겠다고 말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방은 괜찮았다. 방과 방 간격이 널찍하고 벽이 돌처럼 단단해서 소음 문제는 걱정 없어 보였다. 다섯 번째 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내 예산을 넘는 방이었고 버스 종점이 바로 집 옆에 있었다. 역에서 15분 정도 걸렸고 근처엔 편의점 하나만 달랑 있었다. 돌아가는 차안에서 첫 번째 방을 다시 볼 수 있느냐 물었고 다시 신비로운 집을 둘러봤다.

방을 다 보니 머리가 복잡했다. 몇 번 가봤던 동네여서 꽤 괜찮다는 걸 알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놀러 왔을 때와 살기 위해 동네를 둘러보는 건 완전히 달랐다. 성에 차지 않았다. 집 근처 도서관과 공원이 더 컸으면 좋겠고 방도 조금만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주방 분리형에 다용도실까지 있었으면 좋겠다, 베란다도 있어서 빨래를 베란다에다 널고 싶다. 으아, 내가 원하는 동네는 어디인 거야!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원하는 건 확실히 하되, 버릴 건 버려야 했다. 하지만 아직 확신이 안 섰다. 내가 진짜 여기서 2년을 살 수 있을까. 2. 아깝지 않을까. 차라리 제주도를 가는 게 낫지. 생각은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튀었다. 그렇게 두 번째 방 보기를 마쳤다. 기운이 쫙 빠졌다. 방을 보고 나면 항상 밀려오는 허탈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고 포기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어려웠다. 머리가 복잡했다. 집 구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오늘따라 선택과 집중이란 단어가 너무나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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