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있을 손

2019. 6. 9. 23:54에세이 하루한편


영상 편집 수업은 어제부로 막을 내렸다. 토요일 오전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수업이었는데 결국 끝났다. 어렵고 지루한 수업에 매주 포기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을 만큼 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었더니 끝이었다. 선생님이 그동안 수고했다며 수강생 이름을 부르며 수료증을 나눠줬다. 내 이름을 불렀다. 서류 봉투에 담긴 수료증이 있었다. 이런 것도 주는구나. 그나저나 진짜 끝이다, ! 봉투를 가방에 넣고 학원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다음 주부터 점심을 사 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좋았고, 일곱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질문이 아니면 말할 사람도 없이 혼자서 긴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았고. 토요일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 난 다음 주 토요일부터 자유의 몸이 될 터였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김밥천국에서 밥을 먹다 통유리 창 너머로 본 어떤 여자 때문이었다. 긴 머리에 양손엔 검은색과 흰색 비닐봉지를 두세 개씩 들고 다니는 여자. 눈이 보이지 않는지 손으로 벽을 더듬는 모습이었다. 손의 감각에 의지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입구까지 천천히 걸었다. 나도 모르게 도와줘야 하나 도움을 주면 실례인 건가, 고민하게 만드는 그 사람. 주위 사람들이 힐끔 쳐다봐도 알 수 없는 그 사람이 눈에 밟혔다. 김밥천국이 문을 닫았던 저번 주에도, 김치볶음밥을 시켜서 먹던 어제도 여자는 똑같이 더듬거리고 있었다. 지팡이도 없이 손으로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시게요? 말을 한 번 걸어볼 걸 그랬나. 생각뿐인 생각만 들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간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여자는 무엇을 할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갈까. 지팡이는 왜 없을까.

그녀는 어차피 날 보지 못할 테니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거다. 내가 문 닫은 가게 앞에서 그녀를 처음 본 뒤 망설였던 것도, 가게 안에서 그녀를 봤던 것도. 우리가 토요일 점심시간마다 같은 곳에서 마주쳤다는 사실과 다음 주부턴 난 그 장소에 없을 거라는 것도. 다만 그 손.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대여섯 번을 더듬거리던 그 손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하염없이 그곳에서 더듬거릴 손과 꼭 감은 두 눈에 맑은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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