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은 일이야

2019. 6. 25. 23:51여행을 기록하자

 

성인이 되고 나서 엄마와 단둘이 어디를 간 적이 있던가. 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가방에 돗자리, 간식거리, 물을 챙겨 넣을 정도로, ‘여행이라 부를 법한 무언가를. 멀리 떠난다는 걸 예감하고 간 적이 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 보니 엄마와 단둘이 간 건 처음인가 보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나에게 물었다. 엄마 화요일에 쉬는 날인데, 우리 같이 오대산 전나무 숲길 갈까? . 그래, 상황 보고 가지 뭐. 어제까지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던 우리는 가기로 결정했다. 바로 오늘 아침에. 동서울 터미널로 가서 진부역으로 가는 표를 두 장 끊었다. 프리랜서가 이래서 좋네. 돈은 못 벌어도 엄마랑 당일치기 여행도 갈 수 있고. 들뜬 엄마는 행동 하나하나가 즐거워 보였다. 햄버거를 먹으러 들어간 가게의 낡은 의자를 보고 이거 봐, 엄청 낡았어! 하며 웃었고 버스에서는 창밖에 펼쳐지는 자연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예쁘다는 말을 연간 반복하며 감탄했다.

오대산 전나무 숲길은 예상처럼 좋았다. 새소리와 물소리, 맨발로 걷는 발의 감촉을 느끼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려니 숲길이 떠올라 더 좋았다. 풀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엄마, 피톤치드 마셔. 흡입해. 전나무가 줄을 맞춰 서있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 좋다. 얼마 만에 보는 자연 풍경인지. 걷다가 멈춰 서서 나무를 보고 다시 걸었다. 엄마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600년이 된 할아버지 나무 옆에서, 물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엄마에게 포즈를 취해보라 했다. 손으로 브이자를 한 엄마가 네모난 액정에 비쳤다. 그렇게 몇 장 더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쉽게 기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잠도 자지 않고 창밖만 바라봤다. 붉은색을 풀어놓는 풍경이 갈 때와는 또 다르다며 자는 나를 깨우기까지 했다. 앞으로도 엄마랑 여행 다닐 거지? 엄마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럼, 난 좋지. 더 살갑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말은 이미 나와 버린 상태였다.

다음엔 경주에 가자, 엄마. 나 경주 가고 싶어. 그때는 당일치기 말고 하루 자고 오자. 두 시간을 달려 서울에 온 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경주? 경주가 어디 있는 거더라? 우리는 경주의 위치를 주거니 받거니 물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짧은 여행이 끝났다. 이제야 엄마 마음대로 어딘가를 갈 수 있게 됐다. 엄마의 시간을 당신의 계획대로 쓸 수 있었다. 시간이 생겼다. 물리적 시간뿐만 아니라 마음의 시간까지도. 조금의 자유가 생긴 거다. 다음 휴일엔 어디를 갈지 생각해보려는 듯 터미널 시간표 사진을 찍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일렁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의 하나뿐인 여행 친구가 되어주는 거다. 엄마가 좋아하는 아이스커피를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것. 함께 여기저기를 누비는 것.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는 것. 든든한 여행 친구가 돼야겠다. 그래야 내가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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