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풍경이 물밀듯 생각을

2019. 6. 27. 23:28여행을 기록하자


소설 수업을 듣고 제주에 왔다. 소설과 제주도. 하루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두 번씩이나 만났다.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지연이나 연착 없이 바로 올 수 있었다. 비행기 안 창문으로 바라본 구름은 크림 같았다. 부드러운 구름 위에 폴짝 올라가고 싶을 정도였다. 날씨가 좋다는 게, 아무런 사고 없이 제주로 간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제주에 가까워질수록 파랗고 맑은 하늘이 점점 회색빛이 됐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쨌든 왔으니. 제주는 회색 얼굴로 가만히 날 반겨줬다. 오랜만이구나, 제주야. 오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동문시장에 갔다. 몇 번 왔던 길이라 금세 기억이 났다. 어떤 가게에서 뭘 먹었는지, 어느 장소에서 우연히 고양이를 만났는지도 다 기억났다. 한 달의 여행을 마치고 떠나기 전 먹었던 떡볶이집도 기억났다. 서울로 돌아가기가 너무나도 싫었던 것도. 기념품으로 꿀과 차를 사기 위해 시장에서 바리바리 사들고 김녕으로 돌아가던 오후가 생각났다.

동문시장 근처를 걸었다. 저녁도 먹었겠다, 소화를 시킬 겸. 칠성로와 패션의 거리도 익숙했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제주에 오기까지의 나날이 떠올랐다.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애를 썼는지. 10개월 안에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곱씹었다. 익숙한 제주의 거리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함께 물밀듯 밀려왔다. 어둑해지는 하늘이,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여기 이렇게 왔으니 그동안 애쓰고 힘들었던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시 이곳에 왔으니 다시 어딘가로 갈 수 있다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회색빛 제주는 천천히 밤을 보여줬다. 숙소로 돌아와 잠들 준비를 마치고 글을 쓴다. 10개월 전 그날처럼, 다시 제주와 만나게 됐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근히. 이곳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뇌며 하루를 정리한다. 아마 제주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날 편하게 만드는 곳인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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