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장마와 비워내기

2019. 6. 26. 23:55여행을 기록하자


제주에서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일주일 정도 늦은 지각 장마란다. 장마가 이왕 지각한 거 조금 더 늦게 와주었다면 좋겠지만 하늘에선 이미 비를 뿌리고 있었다. 오늘 오전 9시부터 제주로 가는 항공기가 지연되고 결항됐다는 기사를 봤다. 자동차 바퀴가 물살을 가르는 사진도 있었다. 그래. 내가 갈 땐 항상 뭔가가 오곤 했지. 태풍이든 뭐든. 이번엔 장마구나. 몇 시간씩 텀을 두고 같은 기사가 올라왔다. 모두 같은 마무리였다. 일기예보를 잘 보라는 거였다. 내일 오전 중에는 그쳤다가 토요일 즈음에 다시 비가 쏟아진다고 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오락가락하는 날씨, 특히 제주날씨는. 어쩌면 난 내일 공항에서 몇 시간씩 뜨지 않는 비행기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우려와 달리 한 번에 하늘길을 날아 제주에 도착할 수도 있다. 에라 모르겠다. 몰라, 가는 거야. 어떤 쪽이 됐든 운에 맞기기로 했다.

짐을 싸고 난 뒤 내일을 상상한다. 마지막으로 챙겨야 할 짐을 메모지에 적는다. 일찍 잠에 들기 위해서 책을 좀 읽다가 잘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두 권의 책 중에서 어떤 책을 가져갈지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정말 어떻게 되는 걸까. 또 불쑥 생각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온종일 공항에 있는 거 아니야? 공항에서 쪽잠을 자는 상상을 한다. 아니면 집으로 오는 날 꼴딱 하루를 새는 상상. 가끔은 생각이 많은 게 벅찰 때가 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힘을 풀고 손에서 놓아버리면 되는데, 그게 안돼서 어지럽고 힘들 때가 있다. 사소한 것 하나부터 별에 별게 다 있다. 적으면 한없이 늘어날 생각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게 너무나 어렵다.

내 손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두고 나머지는 다 버리려 한다. 버려야 한다. 버리고 오리라. 짧은 시간이지만 제주를 오가며 내 마음속 뭉쳐있는 것들을 비워내겠노라 다짐한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겠노라 약속한다. 잠시뿐일지라도. 내일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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