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퇴사했다!

2018. 8. 1. 00:04에세이 하루한편

 

  아, 사는 게 너무 재미없다. 올해 스물여섯이니 고작 이십 오년 하고도 육 개월을 산건데 인생 참, 너무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나에게 물었다. 계속 회사에 다니면서 지겨운 이 일을 참고 하면 언젠간 재밌어질까? 행복해질까? 대답은 '아니'였다. 왜 사는 게 재미없는지 설명해보겠다. 



  의 인생을 소개하자면 중학교 2학년 즈음 친구 소개로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듣고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연주곡이었는데 음악을 처음 듣고 계속 들었던 그 순간처럼 감동받은 적은 없었다. 어른들은 모르겠지만 중학생의 인생에도 굴곡이 있다. 그 피아노 선율은 굴곡의 밑바닥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기분이었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막연히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취미 피아노 반주 법을 꾸준히 배웠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했다. 내 실력이 어떤지 평가받기 위해 창피함을 무릅쓰고 교회 지휘자 선생님 앞에서 노래도 불러보고 피아노도 쳐보기도 하면서.

  "저는 류이치 사카모토 같은 연주곡을 만들고 싶어요."    

  "그럼 너는 영화음악을 해야겠구나."

  꽤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또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셨다. '영화 음악을 하면 되는구나!'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 영화음악이구나!' 그 때 처음 알았다. 막연한 생각이 조금 명확해졌다. 그 후 지휘자 선생님이 입시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셨고 고 2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 입시를 준비하게 됐다. 입시 준비를 하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실용음악 작곡과를 진학하기 위해선 화성학, 동기발전, 시창 청음, 피아노 연주 기본적으로 이렇게 네 가지를 준비해야 하는데 하루하루 정말 열심히 했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신 것 이상을 항상 해갔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정말 컸기 때문에. 결국 내 수준보다 조금 높다고 생각한 학교에 수시로 합격했다. 52: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으니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학교에 입학한 저는 휴학 한 번 없이 4년을 쭉 다니고 졸업했다. 

  

  학생 때부터 단편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동기 중에서 영화과에 지인 있어 음악이 필요할 때 저를 소개시켜 준다거나 영화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보고 메일을 보내서 같이 작업을 하기 도 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피아노 학원에서 이론을 가르치기도 했고. 총 세편의 단편영화 작업을 했다. 술술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단편 영화제에 출품이 돼서 영화관에서도 상영됐다. 그리고 졸업 후엔 처음으로 학생 작품이 아닌 45분짜리 중단편에 들어갈 음악을 처음 만들었다.(학생 졸업 작품은 대략 15분~20분이다.) 그 영화도 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됐다. 큰 스크린에, 큰 소리로 보고 들으니 뿌듯했다.  

  그냥 이대로만 하면 언젠가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았다. 근데 졸업 후 일 년이 지나도록 작품을 하지 못했다. 나를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구인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보고 포트폴리오를 보낸 게 100군데가 넘었지만 일로 연결되진 않았다. 보수가 없거나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아무튼 술술 풀리던 예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래서 조언을 구하자 생각했다. 우리 학교에서 드라마, 영화 쪽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저는 어느 학교 아무개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상음악 작곡가가 될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이런 식의 내용과 함께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첨부해서 보냈다. 메일을 보시곤 작업실로 찾아오라며 답장을 주셨다. 직접 만나주시더군. 하지만 음악에 대한 답변은 이거였다. 

  "네 음악은 대체 가능한 사람이 너무 많아. 딱히 해줄 말은 없고 좋은 악기를 써서 퀄리티를 높이는 게 좋을 것 같다." 

  현실적인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도움이 많이 됐지만, 내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 자존감이 낮아질대로 낮아져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음악의 언저리에라도 있고 싶다는 생각으로 알바몬과 알바천국을 뒤적거렸고 '음악 컨텐츠 담당'이라는 구인 글을 보고 지원했다. 그리고 1년 1개월을 다녔다. 따지고 보면 음악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컬러링 음원을 등록하고 설정 방법을 고객에게 설명하는 전화 업무가 주였으니. 

  생각했던 일과는 너무 달라서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 음악을 하고 싶었던 나의 모습과 고객에게 컬러링 설정 방법을 설명하는 나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생각했다. 그래도 회사 분위기가 자유로워서 편했다. 그래서 3개월만 다녀야지, 6개월만 다녀야지, 하고 생각 하던 게 이왕 이렇게 된 거 퇴직금이라도 받고 그만둬야지. 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꾸역꾸역 1년 넘는 시간을 버텼다.  점심시간도 길고 업무량도 많지 않고 직원들끼리 사이도 좋아서 소위 말하는 꿀 알바였지만,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었다. 뭐랄까 막막했다. 어느 순간 나를 지켜보니 음악을 전공해서 회사에 다닐 수 있다는 걸 부모님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척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적어도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실패하진 않았다, 하면서. 

   

  회사에 다니면서 작업실을 구해 두어 달 퇴근 후 밥을 먹고 3시간 동안 작업을 했다. 힘이 많이 부쳐서 얼른 방을 뺐지만. 그 후 이도 저도 아닌 날들이 이어졌다. 작업과는 더 멀어지고 예전에 꿈꾸던 영화음악에 대한 열정은 사라졌다. 이 길이 맞다 생각했던 6년의 시간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날이 갈수록 우울해졌다.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진짜 하고 싶은 걸까?'라는 질문까지 도달했다. 그래서 스스로 묻고 대답하기 위해서 그만 두기로 한 거다. 회사를. 

  아직 젊은데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 게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다신 안 올 나의 스물여섯의 날들인데, 돈 벌기위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내 모습이 싫어서. 무엇보다 지금 행복 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퇴사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다. 지금 당장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니 우선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나 오늘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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