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2018. 10. 4. 23:51에세이 하루한편



  무릎 위 고양이를 올려놓고 글을 쓰고 싶다. 단잠에 빠진 고양이가 주는 체온을 느끼며 열심히 자판을 누르고 싶다. 책상 위엔 따뜻한 차가 몽글몽글 연기를 뿜어내고, 고양이가 깨지 않게 눈치를 보며 차를 홀짝거리고 싶다. 온몸이 훈훈해지고 졸음이 밀려와 에라 모르겠다, 하고 고양이와 침대로 가 함께 낮잠을 청하는 오후를 만나고 싶다. 결국 밤을 새워서 마감하더라도 고양이와의 낮잠은 포기 못 해!’라고 외치는 오후를.

  그러기 위해선 우선 독립을 해야 한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지금은 고양이 키우는 건 꿈도 못 꾼다. 엄마, 아빠는 동물을 싫어한다. 엄마는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면 귀엽다고 말하지만, 아빠는 정말 싫어한다. 어린 시절, 강아지 두 마리가 우리 집을 스쳐 갔지만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키우진 못했다. 모두 아는 사람에게 보냈던 거로 기억한다. 두 번째 강아지 둥이를 끝으로 우리 가족은 다시는 집 안에 동물을 들이지 않았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였지만 이별이 슬프다는 건 알았다. 강아지를 아는 누구네에게 보내겠다고 말했을 때 단식투쟁을 벌였던 게 생각났다. 방안에 틀어박혀 엉엉 울고 있는 날 보고 엄마는 쟁반에 밥이며 찌개며 반찬을 담아두고 갔다. 안 먹어!’하고 큰소리쳤지만, 배가 고팠다. 반항은 해야겠으나 배는 고프니, 안 먹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티 나지 않게 조심히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다 알았겠지만, 그렇게라도 내 뜻을 알리고 싶었다.

  나와 친구였던 강아지 두 마리는 여전히 내 맘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보다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아이들은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들여다볼 때마다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다짐했다. 나 자신과 고양이 모두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꾹 참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커가면서 나는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됐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모습을 상상하며 때를 기다렸다.

  

  따지고 보니 6년째다. 그동안 많은 인연이 있었다. 고양이와의 인연, 일명 묘연. 집 주변에서 만난 고양이, 대학생 때 자취를 하며 만난 고양이, 여행지에서 만난 고양이, 아파트 계단에서 만난 고양이. 모두 인연으로만 남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파양 당한 아이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냉큼 데리고 들어 올 자신이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그러다 보니 20대 후반이 됐다. 큰돈은 아니지만 모아둔 돈으로 보증금을 낼 수 있었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 월세와 생활비 마련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방 구하기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내가 원하는 구조의 집이었고 무엇보다 월세가 다른 곳보다 저렴했다. 댓글을 남겼다. 전세 대출이 가능한지와 반려동물 가능 여부를 알고 싶다고. 보증금은 낼 수 있으니 월세를 내더라도 동물이 가능한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입자는 지금 자신이 키우고 있지 않으니 주인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방금 확인을 해보니 애완동물은 어렵겠단다. 어제 잠들기 전 기도도 했는데. 난 정말 간절한데. 도대체 언제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있는 걸까. 아쉬웠다.

  다른 집을 찾아보자. 돈도 열심히 벌어놓자. 먼 꿈이지만 독립하고 자리를 잡으면 따로 아르바이트하지 않고 글을 쓰고 번 돈으로 살고 싶다. 그러면 집 안에서 작업하며 고양이와 함께 오래오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오랫동안 혼자 남겨두지 않아도 되니 그 점이 제일 좋다. 나도 좋고 고양이에게도 좋다. 생각만 해도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다. ,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나에게도 진짜 그런 오후가 생길까? 애꿎은 무릎만 매만진다



'에세이 하루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후와 할머니를 두고 왔다  (0) 2018.10.07
이름, 세포분열 중  (0) 2018.10.05
생각 자르는 가위  (0) 2018.10.03
불편해도 (나름) 괜찮아  (0) 2018.10.02
1,113명 중 한 명  (0) 2018.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