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자르는 가위

2018. 10. 3. 23:10에세이 하루한편



  머리카락이 자꾸 꼬인다. 일부러 매듭을 지은 것처럼 꼬인다. 바느질하기 전, 바늘을 통과한 실 끝부분을 동그랗게 말아 놓은 것처럼. 손으로 머리를 빗다가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 그 머리카락을 찾아보면 꼭 누가 묶어놓은 것처럼 매듭이 져 있다. 한두 번 그러면 넘어갈 것인데, 꽤 자주 발견했다. 머리를 기르는 중이라 자르기 아까워 매듭진 부분 앞에까지만 잘라냈다. 왜 자꾸 꼬이는 거야, 생각하면서.

  난 원체 피부 관리나 머릿결 관리에 게을러 특별한 관리를 따로 하지 않아 대체로 샴푸로 머리를 감고 말리면 끝이다. 머리가 너무 부스스하다 싶을 때 바셀린을 살짝 발라주는 게 다다. 건조함 때문인가 싶어 며칠 전 린스를 덕지덕지 발라 헹궜다. 이렇게 바르고 헹굴 거면 뭐하러 하는 걸까. 귀찮았다. 머릿결이 진짜 좋아지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린스를 꾸준히 해 본 적은 없어 과정이 귀찮게만 느껴졌다.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 꾹 참았다.

 

  그래도 매듭은 여전히 있었다. 언제 그렇게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린스를 하고 머리끝에 로션도 살짝 발라줬는데. 트리트먼트를 꺼냈다. 린스보다 더 효과가 좋을 터였다. 튜브형 용기에 몸통을 꽉 짜서 미역 같은 머리카락에 얹었다. 린스를 발라줬던 것보다 더 듬뿍 발라 얹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다. 정말 귀찮았다. 머리에 미끄덩거리는 걸 바르고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괜히 발을 한 번 더 닦고 노래를 흥얼거릴까 하다 못 참아서 헹궈냈다. 안 해 버릇 하니 더 못하겠다. 몇천 개쯤 돼 보이는 거품이 화장실 바닥 타일에 떨어져 물과 함께 하수도로 떠내려갔다. 향기가 코를 찔렀다. , 머리에 사용하는 제품은 지나치게 향기로운 척해서 싫다. 나 향기로워! 하고 소리치는 인공적인 향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린스나 트리트먼트를 하기가 꺼려진다. 부들부들함이 잠시 느껴지는 것 빼곤 다 별로다. 하고 나면 꼭 헤어 라인 주변이나 목에 여드름이 나는 것도 싫다. 잘 헹궈낸다고 해도 꼭 한두 개씩 올라온다.


  두 개를 잘라냈다. 트리트먼트를 해도 소용이 없나 보다. 아니면 미리 묶어져 있는 걸 이제야 발견하는 걸까? 그래놓고 린스며 트리트먼트며 필요 없다고 말하는 걸 수도 있다. 모르지 뭐. 오늘 잘라낸 머리카락은 매듭이 꽤 안쪽에 묶여있었다. 잘라내니 유난히 짧아졌다. 들쑥날쑥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동양인 머리카락 개수는 9만 개라는데 그 길이가 다 일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9만 개의 길이가 다 똑같다면 너무 인위적일 것 같다. 그래서 매듭이 묶인 걸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잘라낼 수 있다. 자른 걸 쓰레기통에 버렸다. 자꾸 꼬이지 말란 말이야. 그럼 나도 꼬일 것 같잖아.

 

  머리카락이 꼬이는 것처럼 나도 꼬일 것 같아 걱정되는 마음을 주저리주저리 적었다. 그냥 불안하다, 적으면 될 것을. 생각을 잘라낼 수 있는 가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날카로워서, 가차 없이, 싹둑, 잘라 버릴 수 있음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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