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의 무탈한 하루 속 글쓰기

2018. 10. 27. 21:28글쓰기 우당탕탕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방 청소를 했다. 바닥에 온통 늘어진 머리카락이 가끔 소름 끼칠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머리가 길어서 세 가닥만 빠져도 다섯 개 같아서 바닥이 더 지저분하다. 탈모를 의심하게 되고. 빗자루를 들어 방 구석구석을 쓸었다. 쓸어도, 쓸어도 다시 보면 한 가닥이 꼭 남아있었다. 쓸고 있는 사이 빠지는 건가. 으아, 지긋지긋한 머리카락 같으니.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눈 뜨자마자 거슬리는 걸 해치워버리면 상쾌함이 배가 되는 것 같다. 이왕 쓰는 김에 거실도 쓸었다. 설거지하고 점심을 차려 먹었다. 책을 읽다가 졸고 외출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눈을 부라리며 책을 펴 글자에 집중했다. 오늘따라 책이 눈에 안 들어왔다. 최근 보기 시작한 드라마 재방송 두 편을 봤다. 440분에 시작해 8시 정도에 끝났다. 그사이 또 한 번 밥을 먹었다. 저녁을 차려 티브이 앞에 갖다 놓고 먹었다. 이렇게도 하루가 굴러가는구나. 한기가 느껴져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또 졸았다.

  위층에서 소리가 났다. 강아지가 쿵쾅거리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뛰어다녔다. 사람 발소리처럼 컸다. 신기하게 다 들렸다. 새끼 땐 잘 짖지도 않고 낑낑거리더니 이제 좀 컸다고 목소리도 굵어지고 월월대며 짖고 뛰어다니는 거였다. 방 쪽에서 거실 쪽으로 다다다 뛰다가 다시 거실에서 방 쪽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호박죽, 잣죽, 포도며 맛있는 걸 자꾸 갖다 주는 탓에 올라가서 뭐라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달리기를 몇 번 반복할 때쯤, 마침 층간소음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왔다. 10시 이후에는 가구 끄는 소리, 악기 연주하는 소리, 뒤꿈치에 힘을 주며 걸을 때 쿵쿵대는 소리를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신기하게 방송이 나오자 위층은 잠잠해졌다. 듣긴 들었나 보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눈을 떴다. 9시가 다 되어간다. 푹 잠자리에 들 수도 있었지만 일어났다. 아직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서다. . 글을 아직 못 썼다.


  이런 글이라도 어딘가 쓰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항상 내가 하는 생각들 대부분은 글에 대한 생각이다. 공모전을 찾아보고, 잡지에 투고할 에세이를 쓰고 고치고, 책 만들기 수업에 들고 갈 여행 에세이를 고쳐야겠다고 마음속에 두는 거다. 그러다 보면 항상 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내 글도 쓰일 수 있을까. 근데 보내놓은 곳에선 연락이 없을까. 너무 욕심인가 싶다가도 이왕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하고 기다리게 된다. 어쨌든 오늘은 오늘의 글을 써야 한다. 하루 한 편 에세이를. 두 번 끼니를 차려 먹고 두 번 존 것이 다인데 그래도 써야 하니까 졸린 눈을 떠 노트북을 켰다. 한 건 없지만 없으면 없다고 적어야 하는 게 내 임무였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혼자 하고 있으니 잘 하는 게 맞나 또 의심이 고개를 든다. 글쓰기란 혼자 오래 걷는 숲길 같다. 막막하고 잘 모르겠다. 뒤를 돌아봐도 수풀이 우거지고 앞을 봐도 그렇다. 그러니 분간할 수가 없다. 잘 가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가끔은 이렇게 글을 써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봐 무섭다. 당장 뭘 바라는 건 큰 욕심이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다.

  내 글을 낫게 만들려면 글쓰기 수업을 듣는 것도 좋겠다. 예전에 한 번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합평하는 게 너무 무서웠던 것만 기억난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에 뜸을 들이고 있지만, 정말 듣고 싶은 수업을 만나면 신청해봐야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가 가고 있다. 예전엔 아무런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사무치게 그리웠는데, 막상 또 그렇게 되니 재밌는 일 하나씩은 생겼으면 좋겠다. 사람 마음, 아니 내 마음 너무 쉽다. 휙휙 바뀐다. 글 쓰는 데 힘이 날 만한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일단 오늘은 이 글을 다 쓴 뒤에 포도를 먹고 일찍 자야겠다. 내일은 할머니 댁에 가야 하니까 거기서 여행 에세이 글을 고치고 산책을 다녀와야지. , 무탈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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