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위한 글

2018. 10. 29. 21:19글쓰기 우당탕탕/나만의 책만들기



  저번 주 월요일. 12월에 들을 책 만들기 수업을 위해 대형 서점에 갔다. 한국 에세이 코너를 훑어보고 그중에 눈에 띄는 책 몇 권을 들춰 목차를 살펴봤다. 자신의 개성대로 적어놓은 글들이 알알이 박혀있었다. 이곳에 내 책 한 권 꽂혀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 거기까지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인지도 모르지만. 월요일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서점은 사람으로 붐볐다. 책 읽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건, 서점을 찾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언제 봐도 놀랍다. 책이 주는 뭔가에 이끌려 이곳을 찾는 것일 테니. 아마 오래 유지될 것 같다. 전자책이 나왔어도 굳이 종이책을 읽는 것처럼, 책이 가득한 공간엔 사람도 가득하리란 건. 수첩에 내가 생각하는 목차를 적고 책의 느낌을 상상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대목차를 4개로 분류하고 하위 목차를 블로그에 써놓은 것처럼 00, 01, 02이렇게 적기로 했다. 하위목차에 해당하는 글에는 이미 붙여놓은 제목이 있으니 거기에 맞게 글을 다듬을 생각이다. 00으로 시작해 다시 00으로,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주려고 한다. 33개의 글에 에필로그,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글 2개를 더하면 35개였다. 이 글의 목차를 어떻게 분류할까 생각했다. 떠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35개를 4개로 나눠 큰 제목을 붙이는 방법

) 하나 00~07/08~16/18~26/27~00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각각의 목차로 설정하고 33개의 글만 나누는 방법

) 시작 00/ 01~08/09~16~/17~24/25~33/다시 시작 00

 

  두 번째가 좋을 것 같았다. 대목차의 제목은 천천히 생각해보는 거로 하고 우선 파일을 열었다. 글만 따로 정리해 놓은 거였다. 날짜를 따져보니 떠난 지 두 달, 돌아온 지 한 달이 넘었다. 시간이 어쩜 이렇게 빨리 흐르는지. 얘기하면 입 아플 정도였다. 제대로 읽어보는 건 여행 이후 처음이었다. 다시 볼 용기가 없었으니까. 옆에는 달달한 민트초코 라테 한 잔이 담긴 유리잔이 있었다. 카페에선 음료값이 아까워서라도 집중하게 돼서, 일부러 나온 거였다. , 읽어 보는 거야. 이걸 다 마실 때까지 읽고 고치는 거야. 죽죽 읽어나갔다. 그때의 내 마음을 알 수 있는 문장을 만났다. ‘행복하다라는 말에 눈에 띄었다. 저땐 행복했구나. 그리고 덧붙였다. 마음속에 이곳의 기억을 잃지 말자고. 그 문장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여행기를 한글파일로 읽는 느낌이랄까. 천천히 읽으며 살을 붙였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 댁에 가 있으라는 전화였다.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까지 시간이 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였다. 엄마도 곧 일 때문에 나가야 하니 교대를 해야 했다. .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시간에 짜증이 났다. 아침에 할아버지가 늦을 것 같다는 통화내용을 들어서 내가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주변 상황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서 여유를 다 잃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마음이 폭발했다. 난 뭘 하고 있고, 어디로 가는 거지. 12월부터 두 달여 간은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음식까지 해야 했다. 할머니에게 더 시간을 쏟아야 할 예정이었다. , 다시 두 달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노트북을 덮고 할머니 댁으로 갔다.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를 보고 식탁에 다시 앉아 읽기 시작했다. 과거의 내가 하는 말을 천천히 듣는 셈이었다. 과거의 나는 그때 그 감정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다시 모든 걸 잊어버렸다. 떠나기만을 기다리며 지친 마음을 달래던 그때 그대로다. 아직 잊지 않았는데. 현실 앞에 무너진 기분이었다. 떠나기 전과 떠난 후는 분명히 다를 거란 걸 확신한다는 글 앞에 머물렀다.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지칠 줄은 몰랐다. 나도 그 마음 그대로 살고 싶은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을 글로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친 현실 속에서 잠시 과거의 나를 만나고 돌아왔다. 날 위해 적어 내려간 글이, 결국 나를 위로했다. 그 마음 잊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시 보지 않았으면, 일깨워주지 않았으면 더 힘들 뻔했으니확실히 느꼈다. 그동안 날 위한 글을 써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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