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게 뭐 어때서?

2018. 12. 2. 23:59글쓰기 우당탕탕/나만의 책만들기



  스토리지 북앤필름 워크숍을 들으러 해방촌으로 갔다. 잘 둘러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곳에 숨어있는 공간이었다. 폭이 좁은 계단을 열 개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지하였다. 15분 정도 여유 있게 도착해 워크숍 공간을 둘러봤다. 향초에서 연기가 폴폴 피어나고 책장엔 책들이 꽂혀있었다. 이런저런 책을 구경하고 있는 도중 남자 한 명이 큰 책장 뒤에서 슬금슬금 나왔다. 누구지? 난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책을 읽어도 되냐고 물었다. 누구세요, 묻고 싶었는데 그냥 저 말이 먼저 나왔다. 대뜸 묻기도 이상한 질문이기도 하고. 내가 스토리지 북앤필름에 갈 때마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항상 여자였는데, 뭐지. 화장실을 다녀왔을 땐 강사 자리에 그 사람이 앉아있었다. , 그럼 책방 대표이자 강사이자 사진작가가 바로 저 사람이구나! 기사 검색을 좀 하고 올걸, 생각하는 찰나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운을 뗐다. 독립 출판물들은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 많다. 읽고 나서 이거 왜 만들었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과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니다. 각자의 창작물을 존중해주는 따뜻한 책방 주인의 태도가 느껴졌다. 그리고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망설이지 말고 내 작업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이 과정은 나한테 의미가 있는 작업이니까. 그리고 덧붙였다. 너무 많은 걸 담으려 하지 말라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책방에 가 독립출판물을 읽고 이게 뭐지? 내가 뭘 읽은 거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고 다른 책을 뒤적거리곤 했다. 누군가도 내 글을 보고 그렇게 느낄 수 있겠지. 제주도 한 달 살기에 대한 책은 너무 흔하디흔하니까. 강사는 어떤 한 권을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문가가 봤을 땐 이게 책이 될 수 있냐고 물을 수 있어요. 근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 이게 뭐 어때서?”

  아, 정말 좋은데 뻔뻔한 말이다. , 이게 뭐 어때서? 책을 만들어도 되는 걸까, 백수의 코 묻은 돈만 날리는 거 아닐까, 항상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이 그 말을 듣자마자 기울었다. 그래도 해보자고. 조금 뻔뻔하게.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한번 해보자고. 수업이 끝난 뒤 과제를 떠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은 차분했다. 아직 책을 만든다는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일주일 동안 집중할 수 있는 게 생겨 좋다는 마음뿐이었다. 내 작업물에 대한 자신감만 잃지 말자. 그리고 다시 한번 외쳐보자. , 이게 뭐 어때서? 내 글이 뭐 어때서? 이왕 이렇게 된 거 2019년도 콘셉트를 뻔뻔하게 가볼까.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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