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디어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2017)/ 비극을 맞이한 인간의 단면

2018. 8. 4. 00:00글쓰기 우당탕탕/ 나만의 영화잡지

 


  

  심장 전문의 스티븐은 잘나가는 외과의사다. 그는 차, 집, 직장, 심지어 가족까지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는 과거 심장수술 도중 환자를 죽게 한 경험이 있는데 훗날 자신이 그 환자의 아들이라며 마틴이라는 한 소년이 찾아온다. 그는 마틴이 안쓰러워 사려 깊게 행동한다. 병원으로 찾아와도 서슴없이 만나주고, 같이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하며 산책을 하기도 한다. 고급 시계를 선물하기도 하면서. 마치 연인관계 같다. 그는 마틴을 집으로 초대해 자신의 가족들에게 소개한다. 

 아들인 밥은 마틴에게 겨드랑이 털이 많냐며 보여줄 수 있는지 묻는다. 마틴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옷을 들춰 털을 보여준다. 초경을 시작했다며 소개시켜 준 딸 킴에게는 같이 산책을 한 후 노래를 불러 줄 수 있냐 부탁한다. 부인인 안나에게도 친절한 아이라는 인상을 심어 준 마틴은 서서히 그의 가족과 가까워진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어느 날 아침, 밥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서둘러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해보지만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어 막막하다. 훌륭한 의사인 스티븐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화가 나 소리친다. 밥에게 혹시나 연기를 하는 것이라면 그만 두라며 다그치면서. 안과의사인 안나는 정신질환의 일종 일 것이라 판단한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는 안나의 말을 무시한다. 안과의사의 말은 그에게 필요 없는 것일 뿐이다. 

  밥의 병문안을 온 마틴은 스티븐을 카페로 불러낸다. 밥의 병에 대해 빠르게 말해주겠다며 설명을 시작한다. 

"첫 단계는 사지가 마비되고, 두 번째는 거식증에 걸리고, 세 번째는 눈에서 피가 나고, 결국엔 죽게 될 겁니다. 누굴 죽일지 한 사람을 선택하세요. 아니면 다 죽을 테니까요.” 그는 마틴의 말을 믿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는 죽지 않는다는 것, 이 병을 멈추고 싶으면 그가 가족 중 한명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생존을 위한 게임의 시작 


  마틴의 말대로 밥은 더 이상 걸을 수 없고 거식증에 걸린다. 킴마저 다리를 쓸 수 없다. 그는 점점 마틴의 저주가 사실화 되고 있다는 걸 느끼고 두려워한다. 이 시점에서 그가 알콜 중독자이며 마틴의 아버지 수술에 들어가기 전 두 잔의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복수의 저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점점 병들어 가는 두 아이들, 그리고 아내는 그들 중 누군가가 죽어야지만 그 과정이 끝날 것임을 직감한다. 그 순간, 그들은 생존을 위해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다. 스티븐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밥은 건강했을 때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를 끌고 가위를 찾아 자신의 머리를 자른다. 진작 자를 걸 그랬다며 그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커서는 그처럼 외과의사가 되겠다고 말한다. 킴은 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며 흐느끼고 그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다. 밥에게는 '네가 죽으면 네 mp3 써도돼?'라고 물으며 자신은 죽지 않을 것임을 확신 하면서. 안나는 아이를 하나 더 낳자며, 낳을 수 있다며 성적으로 그에게 접근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왜 나와 우리 아이들이 대가를 치러야 하지?

  -제 가족을 죽였으니 선생님 가족도 죽어야 균형이 맞겠죠?

  마틴은 당신들도 자신의 상황처럼 가족 중 누군가를 죽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사고의 가해자인 스티븐을 죽이는 것이 아닌, 정의로운 방식으로 말이다. 

  스티븐은 마틴을 자신의 집 지하 창고에 감금한다. 저주를 멈추기 위해 그에게 폭력을 행사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스티븐의 팔을 죽일 듯이 물어 팔에 치열 따라 선명한 상처와 핏자국을 만든다. 이제 그는 그의 팔을 똑같이 깨물기 시작한다. 입술 사이로 피가 흐르고, 같은 모양의 치열과 상처가 생긴 팔을 보이며 그가 말한다. 이런 게 정의에요

  이 영화는 죄를 지었다면 그 죗값을 똑같은 방식으로 대갚는 것이 정의로운 일인가 묻는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 아닌, 실수에 의한 사고였다면 그 죄를 똑같이 갚아주는게 과연 정의로울까? 이 영화 속 이야기대로라면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가 된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피해자일까. 끝없는 부조리함을 보여준다.


인간의 본능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스티븐은 누구를 죽여야 할지 고민한다.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밥과 킴 중 누가 더 나은지를 상의하고 잠든 안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가족들은 죽음의 대상이 자신이 되지 않길 바라며 경쟁한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스티븐은 그들을 거실로 모이게 한 다음 동그랗게 둘러앉힌다. 그들의 입과 몸을 묶고 하얀 면포를 씌워 앞을 보지 못하게 한 다음 자신의 눈도 가릴 검정 모자를 쓴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한 채로 빙빙 돌며 총을 쏴댄다. 마치 러시안 룰렛 같은 이들의 게임은 결국 죽음으로 끝을 맞이하게 된다. 

  저주는 끝났지만 비극은 남았다. 영화는 비극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여준다. 처절하게 본능을 쫓아가는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저 볼 수밖에 없다.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단면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