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 (The Queen of Crime, 2015)/ 진짜가 나타났다

2018. 8. 2. 10:43글쓰기 우당탕탕/ 나만의 영화잡지



 


"이판사, 수도 요금 백 이십만원이 나왔다고?"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촌 미용실에서 불법시술을 일삼는 엄마 양미경은 고시생 아들에게서부터 전화를 받는다. 내용인 즉슨 수도 요금이 백 이십만원 나왔으니 돈 좀 보내달라는 것. "아니 어떻게 수도 요금이 백만원이 넘게 나와? 아무래도 안돼겠어." 미경은 보따리를 싸고 아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간다.

  신림역 부근 고시촌 동일맨션 404호엔 미경이 끔찍이 아끼는 아들 익수가 있다. 하필 시험 5일전이라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 있는 익수는 엄마를 반기지 않는다. 딱 이틀만 있다 가겠다며 조금 머쓱한 인사를 나눈다. 막 잠이 드려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보니 건장한 청년이 누군가에게 맞고 있다. 건물 바닥 타일은 붉은색 자국으로 부분부분 물들었다. 이 건물, 느낌이 이상하다. 다음 날, 관리사무소를 찾아가니 뜻밖의 사실을 알게된다. 옆집인 403호랑 계랑기를 나눠쓰는 구조라는 것. 근데 알아서 403호 입주자와 얘기해 보란다. 우선 수도검침원을 불러 확인하지만 수도는 멀쩡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404호 옆에 있는 창고. '불법개조한 냄새가 나는 곳인데, 이 건물 관리자들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이야……'

  다같이 수도 요금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며 학생들 문 앞에 일일이 삼겹살 파티를 준비하지만 유일하게 파티에 참석한 덕구와 친해진다. 아줌마 특유의 오지랖일까, 지하 1층에 사는 개태에게 손수 만든 김치찌개와 반찬을 해주니 403호 입주자를 찾는데 도와줄 사람이 생겼다. 왠지 수상한 일이 생긴 것 같은 그 곳에서 미경은 촉을 발휘해 본다. 






  탄탄한 시나리오 못지 않게, 캐릭터 설정이 확실하다. 모든 인물이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참 야무지게 캐릭터를 설정했구나' 싶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한 몫했겠지만, 덕구, 개태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기는 진짜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을 보여주는 것인데. <내 사랑>의 샐리 호킨스의 연기가 딱 그랬다. 이 영화에선 덕구다. 정말 고시촌 어딘가에서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긁적이며 어눌한 말투로 누군가와 말벗을 해줄 것 같다. 하루 종일 빙고 게임을 하면서. 생각만으로도 웃기다. 

  영화의 전면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처음과 끝에 잠깐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미용실 단골 손님으로 매맞는 아내와 불법 보톡스 시술을 하는 아줌마 두명이다. 매맞지만 자식이 대학 가기 전까지만 참고 이혼할 거라며 눈물을 훔치는 한 여성의 대사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처럼 담담하게 그려내는 인물들은 다시 생각해보면 안쓰럽다. 하지만 미경은 다르다. 아들이 혹시나 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나무라지만 미경은 멈추지 않는다. 수상쩍은 일로부터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자신이 범죄의 상황에 몰리더라도. 

  

  이 영화가 재밌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아줌마라는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사용했다는 것. 흔히 생각하는 아줌마라는 캐릭터는 억척스럽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붙이며 능청을 떠는 사람이지만 그 '아줌마'가 이끄는 수사물도 이렇게 쫄깃한 긴장감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과연 여왕이 아깝지 않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수사물, 범죄물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화를 보고싶다면 추천한다. 아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