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가족의 형태, 사랑의 형태

2018. 8. 5. 12:47글쓰기 우당탕탕/ 나만의 영화잡지







  이소라의 <Track 9>이란 노래 중 가사의 일부를 소개한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노래였다. 유난히 가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사 처럼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난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면서 자란다 내가 짓지도 않았는데. 그 이름으로 불리면서 자란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변해간다.   

  가족이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존재다. 가장 중요한 관계이지만, 선택 '받은' 채 태어난다. 그들과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기, 서로를 선택 한 사람들이 있다.


  아빠(오사무)와 아들(쇼타)이 2인 1조로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고로케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추위에 떠는 한 여자 아이(유리)를 만나게 되고, 아이를 집으로 데려간다. 집 안에는 오사무의 아내(노부요), 할머니(하츠에)와 손녀 처럼 보이는 여자(아키)가 살고 있다. 총 다섯 식구가 북적북적 살아가는 집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으니 유리는 마냥 환영 받진 못한다. 저녁을 먹이고 유리를 발견 한 곳에 두고 오려던 부부는 '나도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냐!' 라고 소리지르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한다. 그들은 아이를 돌보기로 결정 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다섯 식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유리를 사랑해 준다. 노부요는 엄마에게 매 맞아 멍든 상처가 있는 유리를 보고 "사랑해서 때린다는 건 거짓말이야." 라고 말한다.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옷을 태우고 아이를 꼭 껴안아 준다. 그 장면을 봤을 때 마음 속 깊은 울림이 전해졌다. 분명 아이가 위로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유리의 원래 이름이 쥬리라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유리도 쥬리도 아닌 다른 이름을.

  노부요는 유리와 함께 목욕을 하면서 아이의 팔에 덴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는 나도 있다며 보여준다. 나는 이 장면이 기억에 참 많이 남았다. 상처를 치료해주려고 애쓰는 것 보다, 나도 그런 거 있어. 하면서 자신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깊은 사랑이라 느꼈기 때문에.


  쇼타는 린에게 자신의 도둑질을 알려준다. 하지만 문방구 할아버지에게 들켜 여동생에겐 시키지 마, 하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워 한다. 오사무에게 우리는 왜 도둑질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만 오사무는 뚜렷한 대답을 해주진 못한다. 그 시점에 쇼타는 이 짓을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린과 함께 마트에 도둑질을 하러 가지만 일부러 직원의 눈길을 끌어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이들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가 서서히 관객들에게 알려진다. 노부요는 과거 아키처럼 몸을 파는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오사무를 만나게 되고 그는 그녀의 폭력적인 남편을 죽이지만 자신이 그랬다며 죄를 뒤집어쓴다. 시종일관 무덤덤한 태도로 취조에 응하던 그녀는 '아이들이 당신을 뭐라고 불렀냐'는 질문에 눈물을 보이며 "글쎄요..." 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에게 과연 '엄마'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노부요는 학대를 받고 집이 없는 아이를 돌보고 사랑했지만, 그들에겐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고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유괴를 의심케하는 전과범일 뿐이다. 살고 있던 집에 묻어 준 하츠에의 시신도 납득할 수 없다.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는 관계, 그 관계를 가족의 테두리안에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들이 판단 할 문제가 아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노부요는 수감되고 린은 원래 엄마에게 돌아간다. 쇼타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학교를 다니고 아키도, 오사무도 처음처럼 혼자가 된다. 계절은 다시 겨울이 되고 오사무는 쇼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함께 살았을 때 먹었던 컵라면과 고로케를 똑같이 먹고, 함께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학교를 가는 쇼타를 배웅한다. 버스를 태우고 그 버스가 출발하고 달릴 때 까지 오사무는 쫓아간다. 쇼타는 그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 아빠, 하고 조용히 입모양으로 말해본다. 

  

  과연 그들이 가족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진심이 있으니까. 그 진심이란 사랑하는 마음이다. 도둑질을 가르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냐는 경찰의 말에 오사무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에게 가르쳐 줄 게 그 것 뿐이었어요." 지식을 배운 것이 없는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를 사랑한다. 가르쳐 줄 것이 없어 부끄러웠겠지만. 하지만 사랑은 지식이 아니다. 사랑은 머리로 배워서 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