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닌 것 같아? 나는 맞는 것 같아!

2018. 11. 15. 23:59글쓰기 우당탕탕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장강명 작가의 강연 <소확행의 비결 : 함께 글 쓰는 삶>을 들었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는 문장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아니, 이 문장이 귀에 들어온 첫 문장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며 사인을 부탁할 때 적어주는 말이라고 했다. 자신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으면 그냥 쓰라는 뜻이었다. 말 그대로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고. 그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며 이왕 쓰는 거 일찍 쓰면 더 좋지 않겠냐고 했다. 망설일 시간에 쓰라는 이야기였다. 앞뒤 재고 따지고 할 시간에 적어 내려가라는 거였다. 그럴 듯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안심하고 그냥 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재밌는 이야기는 또 있었다. 글쓰기는 기예와도 같아서 몸, 손으로 하는 영역이라는 말이었다. 수영, 자전거 타기, 악기 배우기 등과 다를 게 없다는 거였다. 이런 일들의 핵심은 훈련인데, 결국엔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써보는 수밖에 없다는 설명엔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수영 해설가가 처음 수영을 배울 때도 어푸어푸 하며 시작한다고. 시작은 빠를지 모르지만 결국 배우면 배울수록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근데 글쓰기에는 이 사실을 적용하지 못해 자책한다고 한다. 우리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어 감식안이 있는 사람, 글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고 해서 글을 술술 잘 쓰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글이 후진 걸 이해하지 못한단다. 나만 해도 그럴 때가 많았다. 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맞아. 내 글이 후져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 그러니 글쓰기를 악기 배우는 것으로 생각하자고. 얼마 써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별로지라고 생각하자는 말이었다.

등단까지 6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듣고 히익, 하고 놀랐지만 짧은 편이라며 자신보다 긴 기간을 준비한 다른 작가의 이름을 나열했을 땐 내 앞에 펼쳐진 멀고도 험한 길이 보이는 듯했다. 에세이도 쓰고 싶고 소설도 쓰고 싶은 나로서는 이거 꽤 오랜 싸움이겠는걸,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읽은 에세이에선 다들 쉽게 책 내는 것 같던데. 그래서 나도 그러리라 믿었는데.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선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흑흑. 100m 달리기가 사실은 마라톤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랄까. 그런 기분이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 강연 중 달리기로 예를 든 재미난 비유도 있었다. 학창시절 선생님에게 너는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듣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아니 이게 무슨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리? 마음이 들떴다. 이야기인즉슨 이러했다.

학교에서 100m 달리기를 시켜놓고 운동에 소질이 있네, 없네! 운운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고. 단거리 달리기를 못 한다고 해서 마라톤을 못 할 거라는 판단을, 농구선수나 수영선수, 장미란 선수 같은 역도선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단 말이었다. 요즘 말로 뼈 때리는 말이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직접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가. 우리는 학교 선생님의 말을 듣고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너무 쉽게 접지 않았냐는 거였다. 믿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나도 블로그에 적었다시피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너의 음악을 대신할 사람은 많다고. 그게 지워지지 않는 낙인 같았다. 근데, 그걸 믿지 않아도 된다니. 굵은 매직펜으로 쓴 글씨가 2B 연필처럼 옅어졌다. 내 안에 상처와 의심이 조금, 사라졌다.


나를 믿고 하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느꼈다.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을 믿는 것. 글을 쓸 때는 내가 쓴 글을 믿고 계속 나아가는 것, 음악을 만들 때도. 강연이 끝나니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졌다.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며 위로해준 시간이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모르지만, 확실한 건 글을 계속 쓰고 있을 거라는 예감과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의심이 드는 것뿐이다. 그래도 좋다. 여러모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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