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

2018. 11. 16. 23:50에세이 하루한편


 

        뻥 뚫린 승강장을 보는 게 이상했다. 광화문역에서였다. 스크린 도어를 재설치할 예정이니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주의하라는 문구가 기둥에 붙어있었다. 예전엔 다 이렇게 뻥뻥 뚫려있었는데. 스크린도어가 생긴 이후 다시 보니 이상했다. 출입문 번호 뒤로 노란 선 두 개가 죽 늘어졌다. 군데군데 주황색 컬러 콘이 놓여있었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노란 선을 오래 밟고 있거나 넘으면 삐용삐용 알람이 울렸다. 시민들의 동태를 감시하는 경찰과 조끼를 입고 안전 지시봉을 든 할아버지가 보였다. 꽤 요란스럽게 울리는 경고음이 자주 들렸다. 시끄러웠다. 열차가 왔다. 유난히 천천히 진입하는 것 같았다. 열차에 탈 때는 노란 선을 밟고 넘어야 했다. 알람이 또 삐용삐용삐용용 울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승강장에 몸을 던졌을까 생각했다. 왜 자기 자신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을까. 큰 자갈이 깔린 흙빛 선로는 차가울 텐데. 열차에 타자마자 책을 꺼내 읽었다. 한 개, 두 개, 세 개정거장이 지나갔다. 세차게 울리던 경고음이 잊히지 않았다. 얼굴 반을 가리는 하얀 마스크를 쓴 할아버지가 노란 선을 침범하면 지시봉을 훠이훠이 휘두르는 모습도. 뒤로 물러서세요. 말은 안 했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몸짓이었다. 한 걸음 물러나세요. 아직도 광화문역에는 노란 선을 밟은 누군가로 인해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울릴 터였다. 그럴 때마다 손을 휘젓는, 반복적인 움직임이 누군가에겐 이렇게 들리지 않았을까. 죽지 마세요, 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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