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 한 권, 궁둥이 붙일 자리 어디 없나요

2018. 12. 12. 23:59글쓰기 우당탕탕/나만의 책만들기


 

  쓸데없는 걱정이지만 작가의 운명이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작품, 그때는 온 힘을 다하여 만들어낸 것이 나중에 돌아봤을 때 불태워버리고 싶어지는 것. 마치 2차 성징이 막 진행되는 사춘기 시절 여드름이 난 사진을 찢어 버리고 싶은 것처럼. 불태워버리고 싶어지면 어쩌지. 커다란 인쇄기가 내가 쓴 글자들을 소음과 함께 토해내는 상상도. 이 모든 건 내 생각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도 희망을 놓을 순 없었다. 두렵다고 쓰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만든 놀이가 있다. 언젠가부터 서점이나 책방에 가면 내 책이 있게 될 자리를 눈으로 정해놓곤 했다. 이 중에 꽂혀있는 한 권일 뿐이야, 나에게 말을 걸면서. 서가를 돌아다니다 대충 이 정도이지 않을까, 눈대중으로 살폈다. 대형 서점이면 에세이 코너가 될 테지만 책방이라면 다 달랐다. 각기 각색 특징이 있어 어디에 내 책이 자리를 잡을지 가늠이 안 갔다.

  오늘 다녀 책방은 스틸북스. 일 층부터 사층까지 이어진 대형 서점 겸 책방이었다. 이렇게 큰 공간에 책이 빼곡히 정렬돼있다니, 감동적이기 까지 한 곳이었다. 계단을 한층 한 층 올라갈수록 궁금증도 더해졌다. 어떤 책이, 어떤 물건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책을 한 번 만들어보니, 모든 책이 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 이건 디자인을 이렇게 했고, 저건 폰트를 어떻게 했고, 종이의 질감은 어떻고 사진이 잘 나오게 하려면 이렇게 반질반질한 재질을 썼겠고등등.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중철 제본이네, 확실히 표지 디자인이 중요한데 내 건 너무 밋밋한가,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 책이 떠올랐다. 가제본 나오길 기다리는 내 책. 오늘도 어김없이 내 책이 잠깐 궁둥이 붙이고 앉을 자리가 있다면 어딜까 살펴봤다. 근데, 어딘지 정확히 가리킬 수 없었다. 그 순간 너무 나 자신이 너무 작아져, 내 자리는 없는 것 같아! 속으로 외쳤다. 그리곤 소심해졌다.

  나는 내 생각이 책 안에 영원히 갇혀 빠져나올 수 없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쓰려고 한다. 종이에 박제된 생각이 훗날 날 후회하게 만들면 어쩌나, 아무도 책 한 권 꽂을 공간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어쩌나 걱정한다. 근데도 써야겠다고,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계속. 이런 내 심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날 두렵게 만드는 건 사실이었다. 오늘도 주춤했고.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자. 책을 불태워지고 싶을 때면 다시 한번 내 책을 읽은 후 과거의 나, 이런 생각을 했구나. 어쩜 이리 깜찍한지. 하하.’라고. 웃음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말자고. 그리고 그 많은 책방 중에서 한 군데 정도는 받아주겠지, 막연히 생각하자고.


  여기까지 소심해진 나를 달래기 위해 미리 쓴 글이다. 오늘 오전에 가제본이 완료됐다는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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