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책 만들기..?

2018. 12. 26. 23:30글쓰기 우당탕탕/나만의 책만들기


 

  오전 11시 반에 인쇄소에 도착했다. 면지로 쓸 매직칼라 종이 색상을 고르기 위함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서 몸은 무겁고 입천장은 부어있고 어지러울 정도로 피곤했다. 두시에 자서 여섯 시에 깼다. 다시 잠을 자보려고 두 시간 동안 뒤척이다 가족들의 소음에 여덟 시에 일어났다. 우당탕 소리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글 한 번 더 읽고 인쇄소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컴퓨터를 켜 큰 모니터 화면으로 글을 읽었다. 정말 몇 번째인지 가늠도 안 갈 만큼 많이 읽는 내 글이다. 읽어도, 읽어도 부족한 점만 보이는 내 글. 매끄럽게 읽히는지, 소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는지를 생각하면서 계속 읽었다. 크게 필요 없는 문단 하나를 통째로 지워버리고 문장의 순서를 바꾸고 중복된 단어를 고쳤다. 이중 삼중으로 꼬인 문장을 풀고 더 나은 단어는 없는지 생각하다가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마지막 검토 후에 다시 인쇄소 사이트에 파일을 올렸다.

  어제부터 너무 피곤해서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말 그대로 울렁거리는 느낌. 사람이 피곤하면 이런 느낌이 들 수도 있구나. 이 정도로 피곤 한 건 오랜만이었다. 대학생 때 졸업 작품을 준비하던 그때처럼 힘들었다. 잠이 부족하니 몽롱하고 판단이 안 서고 피곤해서 목이 텁텁해 밥도 잘 안 넘어가는 느낌. 책 한 권 또 만들었다간 아주 사람 잡겠다. 책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세상 사람들! 나 혼자 속으로 외쳤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겠다고 한 일이니 끝은 봐야 했다. 바로 오늘, 드디어, 끝이 보인다. 진짜 주문을 넣었다. 면지를 솔잎 색으로 고르고 추가 요금을 지급했다. 표지도 초록, 면지도 초록이다. 노란색으로 하려던 마음이 바뀌어 고민 끝에 정한 거였다.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 작업이 시작됐을 거다. 지금도 내 책이 만들어지고 있겠지. , 이제 진짜 끝이다. 홀가분함도 잠시 인쇄가 잘 나와야 할 텐데, 걱정이 스멀스멀 싹텄다. 제발, 제발 잘 나오길. 내가 원하는 대로만 나오길 기도했다.

  얼른 책이 나와서 이곳에 책 변천사를 올리고 싶다. 책이 이렇게 변할 동안 참 많은 고생을 했다. 책 한 권 만든 것뿐인데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느낌이다. 늙은 것 같다. 하하. 책을 만들던 한 달 동안 정말 책만 생각하며 살았다. 별 일이 다 많았다. 한 권을 만들었으니 두 번째 책은 좀 수월하지 않을까. 아니, 내가 이런 생각을 벌써 하다니. 다시 한 번 생각해도 책은 위험한 건데!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책 가격을 정한 뒤 입고할 책방도 몇 개 추렸다. 모두 다 받아주진 않겠지만. 100권의 책이 유용하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저녁을 먹고선 오랜만에 티브이도 봤다. 얼마 만에 아무 생각 없이 티브이를 보는 거지. 10시가 다 돼가는 시간을 보고 노트북을 다시 킨다. 졸음이 밀려온다. 어제 올리지 못했던 글까지 쓰고 어제 못 잤던 잠까지 자야겠다.

  

  책 만들기 과정을 마무리하면 어떤 기분일까, 그동안 궁금했는데 불안한 건 똑같다. 아직 입고 전이라 그런가. 잘 인쇄되고 있는지 궁금하고 내가 눈치채지 못한 오타나 띄어쓰기가 문장 안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내 실수가 100권에 고스란히 다 담기진 않을까 무섭고. 오늘은 악몽을 꿀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날 힘들게 하는 책이지만 나 말고도 지겹게 읽어 주는 있다면 다 괜찮을 것 같다. 아니, 내 글에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좋겠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내 책을 만들자고 결심했던 걸 지켰다. 나 자신,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더 열심히 쓰고 읽고 느끼고 행동하고 표현하자. 책 한 권 만드는 게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몰라도. 분명 어딘가로 가는 한 발자국이었을 거야. 그게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분명 후회하진 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