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손 (Edward Scissorhands, 1990)/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2019. 1. 15. 00:37글쓰기 우당탕탕/ 나만의 영화잡지


 



  난 자연스러움이 좋다. 억지로 하는 건 잘 못 하고, 누가 억지로 하는 걸 보는 것도 싫어한다. 영화를 볼 때도 억지 감동, 슬픔이 싫다. 한국 영화 특유의 신파는 더더욱(하지만 꼭 울고 만다). 그래서인지 영화 대사 중 현실 대화 같은 대사를 두 눈으로 보는 동시에 듣게 되면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다. 대사가 자연스러울수록 영화에 몰입하게 되고 그 이야기가 진짜라고 믿게 된다. 더는 허구와 현실 사이에서 저울질하지도 않고 바로 현실의 손을 들어주는 거다. 김종관 감독의<최악의 하루>,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클로저 (Closer)>, 마렌 아데 감독의 토니 에드만 <(Toni Erdmann)> 등이 그렇다. 프레임 안에서 인물의 모습이 현실보다 더 진짜 같다. 그래서 <토니 에드만>을 볼 때 펑펑 울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팀 버튼의 감독은 동화작가 같다. 청소년, 성인을 위한 동화 작가. 잔혹동화라고 하지만 그가 만든 인물은 어딘가 서툴고, 그래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넘친다. <가위손>도 그렇다. 주인공은 에드워드(조니 뎁). 어떤 발명가의 미완성 작품인 에드워드는 기계를 본 떠 만들어졌다. 기계에 심장을 넣고 열 개의 손가락 대신 가위가 달려있다. 우연히 화장품 판매원인 펙(다이앤 위스트)의 눈에 띄어 고립된 성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온 그는 다양한 일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외딴곳에 던져진 이방인일 뿐이다.

  그의 손에는 가위가 주렁주렁 달려있어 누군가와 악수조차 하지 못한다. 동네 사람들은 머리는 부스스하고 얼굴은 지나치게 창백한 그를 궁금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무리에서 내치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에드워드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처를 준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위가 살갗을 살짝만 스쳐도 피가 배어 나온다. 그에겐 누군가를 만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그가 딱하다거나 가엾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 장면에서만큼은 마음이 뭉클했다. 앞서 말한 자연스러움이 빛나는 장면이다. 그가 사랑하는 킴(위노나 라이더)과 사랑하는 마음을 서로 확인했을 때다. 킴은 이렇게 말한다


  안아줘.”

에드워드는 팔을 들어 그녀를 안아주려고 하다가 이내 멈칫한다. 또 상처를 낼까 두렵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난 못해.” 

그리곤 돌아선다. 다가가고 싶은 만큼 멀어진다. 그의 모습이 처음으로 안쓰럽게 느껴졌다. 킴은 다시 그에게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를 안아준다. 서로를 안아주고 서로에게 안긴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이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이런 느낌을 받고 싶어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어떤 자연스러움을 보고 싶어서. 잘 짜인 허구 속에서 보는 자연스러움을 다시 현실로 돌아봐 곱씹어 보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곳,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은 너무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도. 영화 속 인물을 너무 잘 이해할 것 같아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가 너무 많았으니까. 그럼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장면을 봤을 때 받았던 희열은 익숙함, 또는 동질감과 같은 건가. 영화와 현실은 멀고도 가깝구나, 생각하게 된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당분간 눈이 오면 <가위손>을 잠깐 떠올릴 것 같다는 거다. 서투른 내 모습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