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이유 찾기

2019. 2. 17. 00:00에세이 하루한편

 

우울한 이유를 찾기 위해 돌아보는 하루. 10시쯤 일어나 아침을 간단히 먹고 독립 출판 마켓 책 보부상에 참가 신청서를 넣었다. 할아버지,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기로 해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 1시에 출발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경의·중앙선을 타고 또다시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240분이 넘어있었다. 고모와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간병인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할머니 사진을 찍으며 몇 마디 더 나누고. 사촌 언니와도 잠깐 얼굴을 보고 4시쯤 출발했다. 이번엔 할아버지, 아빠, , 사촌 언니 이렇게 네 명이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 또다시 한 시간 반 넘게 달려 동네에 도착했다. 말씀이 많으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어딘가를 가는 게 힘들다는 생각에 기운이 빠졌다.

집으로 바로 오지 않고 카페에 들렀다. 여행기를 조금 더 쓸 참으로 초고를 쓰기 위해서였다. 마침 이디야 쿠폰을 선물 받았다. 가방에 노트북을 들고 병원까지 갔다 왔기 때문에 작업을 하지 않고 집으로 간다면 무겁게 들고 다닌 게 너무 아까웠다. 비엔나커피를 마시고 글을 끄적거렸으나 집중이 안 됐다. 오후 8시에 카페를 나섰다. 너무 피곤해서 멍했다.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단기 아르바이트 이력서를 짧게 정리한 뒤 지원하기 버튼을 눌렀다. 한 달짜리니까 큰 부담이 없었다. 종일 눈이 뻑뻑하다 싶었는데 거울을 보니 왼쪽 눈이 충혈 돼 있었다. 피곤하긴 하구나, 생각한 뒤 다시 노트북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타인의 향수 냄새가 훅 끼칠 때처럼 갑자기 내 우울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왜 그러지. 왜 그럴까. 이유를 모르겠다. 오늘 하루 너무 타인을 신경 쓰기만 해서 그런가. 온종일 연로한 할아버지를 모시느라 신경 쓰고 병원에 있는 할머니를 신경 쓰고? 다시 곱씹어 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날이다.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알 때보다 모를 때가 더 많다. 글을 쓰지 않고 일찍 자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다. 이유라도 다시 생각해보자 싶어서 힘 빼고 쓴다. 오늘은 못 써도 괜찮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오늘은 모른 채로 넘어갔지만, 내일이 되면 알게 될까. 다음엔 우울함이 또 어떻게 찾아오려나. 모르겠다. 이유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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