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감

2019. 2. 18. 23:59에세이 하루한편

 

며칠 전 지원한 아르바이트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담당자는 내 이름을 확인하고선 책이 무거운데 드는데 상관없어요? 라고 물었다. 서점 카운터 및 청소라고 봤는데. 나는 책을 옮기는 일인가요, 물었더니 계산하는 데도 전공 서적이라 책이 아주 무겁다고 했다. 나는 네네, 들 수 있어요. 대답했다.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또다시 책이 아주 무거운데 들 수 있어요? 또 물었다. 확신을 줘야 할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면접 시간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아니 얼마나 무거우면 그러는 거지. 전공 책은 국어대사전만 한 것밖엔 없나. 그래도 딱 한 달이니 힘들어도 꾹 참고 해볼 만했다. 달력에다 면접 시간을 표시 해뒀다.

다시 아르바이트하자고 마음먹은 건 카메라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9년 전에 산 니콘 쿨픽스 디지털카메라를 벗어날 때가 됐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내 눈엔 DSLR이 아닌 이상 그게 그거처럼 보이지만 사진을 좀 더 잘 찍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행 작가라면 괜찮은 사진 한두 장 정도는 남겨야지 않겠나. 그래서 일단 지원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할머니가 병중이시라 독립이 무한정 길어졌기 때문이다. 독립하면 하려고 미뤄둔 것들을 다시 하나씩 시작해야 했다. 여행기를 쓰고 있지만 넉넉한 용돈 벌이는 되지 못하니까. 또 언제까지 일에 손을 떼고 있을 순 없었다. 우선 아르바이트가 첫 번째였다. 얼핏 어떤 느낌이 스쳤다. 올해는 이런 식으로 보낼 거라는 예감이.

단기 아르바이트,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또 여행. 이런 생활을 하는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돈을 버는 족족 써버려 저축할 게 없는 생활이겠지. ,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진짜 마음의 준비가 됐음을 실감했다. 어떤 일이든 너무 하기 싫어 죽을 것 같지만 않으면 할 거다. 오히려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올해를 그렇게 살아보고 괜찮으면 내년도, 내후년도 이렇게 살 거다. 불안정한 삶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그 속에서 즐거움을 잘 찾을 수 있는지도 두고 볼 거다. 힘들다면 예전처럼 회사에 들어가려고 아등바등하겠지. 어떤 삶이든 내가 좋은 대로 할 거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올 한해에, 마음껏 길을 잃고 마음껏 방황하자. 이런 삶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놓치지 말고, 누리자내 삶이 방향을 바꿔 어딘가로 나가고 있음을 즐거워하자.

                     

'에세이 하루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상의 부재(不在)  (0) 2019.02.20
뜻대로 하세요!  (0) 2019.02.19
즐겁지 않으면  (0) 2019.02.17
우울의 이유 찾기  (0) 2019.02.17
생각의 흐름대로 보낸 하루  (0) 2019.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