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부재(不在)

2019. 2. 20. 23:58에세이 하루한편

 

다음 주부터 한 달간 8시간씩, 점심시간을 포함하면 9시간을 일에 매여 있을 생각을 하니 내 일상이 다르게 보인다. 외출이 선택이었던 그동안의 날들과는 잠시 안녕이다. 핸드폰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한 뒤 나쁨 수준이면, 또 굳이 나가야 할 일이 없으면 집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하루. 짧은 외출 뒤 집에 돌아와 뒹굴뒹굴하다 책을 읽고 밥을 챙겨 먹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쉬는 하루. 물론 하루하루가 똑같아서 지루하거나 이렇게 살다가 내 청춘이 다 가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을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는 건 축복이다. 분명한 축복. 일하는 건 한 달일 뿐인데, 내 자유와 잠시 멀어져야 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벌써 그리워질 정도다. 오후의 낮잠과 독서, 불을 다 꺼놓고 보던 영화가. 불안하지만 느슨한 상태가.

어떤 무언가가 사라질 때 그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 같다. 어제 본안녕, 인공존재!라는 소설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어떠한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그 존재를 떠나보낼 때, 그래서 존재가 사라질 때 비로소 나타난다는 걸 보여준 소설이었다. 어쩜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감탄하면서 읽었다. 요 며칠 소설을 읽는 중이다. 소설을 읽고 해설을 읽고 또다시 다음 소설을 읽고 해설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에 느슨해진 요즘은 다시 책을 자주 읽는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을 읽는 오후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시간이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바보 같지만, 그렇다. 한 달이 지난 뒤 다시 찾은 시간엔 더욱 나답게 시간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영화를 더 자주 보고, 글을 더 열심히 쓰고, 재밌어 보이는 무언가에 도전하고. 산책하고 사색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걸 보고 느끼고.

그러고 보니 내가 원하는 시간이 뭔지 알 것 같다. 익숙해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생각을 하니, 보인다. 내가 삶고 싶은 삶의 모습이. 일상의 부재가 미리 나에게 알려준 거다. , 이런 걸 좋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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