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발이 찾아온 날

2019. 2. 21. 23:56에세이 하루한편

 

새 신발을 신고 처음으로 외출했다. 며칠 전 여행기 공모전으로 받은 상금으로 산 운동화다. 투박한 모양에 튼튼해 보이는 운동화. 흰색이라 새것 티가 더 많이 난다. 얼마나 하얀지 자연광 아래서 보니 마치 형광처럼 보일 정도였다. 가끔 운동화를 흘끔거리며 걸었다. 가게 문에 비친 운동화를 보기도 하고 직접 내 눈으로 보기도 하고.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이지만 햇볕을 쬐니 기분이 좋았다. 마스크를 쓰고 패딩을 입고 텀블러를 가방에 넣고 영화관에 갔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일일 시호일>이라는 영화를 봤다. 나 혼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게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은지. 예전엔 조조로 볼 때도 있을 만큼 부지런하게 봤는데. 예상대로 내 마음에 쏙 드는 영화였다. 이 영화만큼은 꼭 글로 정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영화를 본 뒤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는 게 힘들었던 적이 있다. 핸드폰 뒷자리를 뭐로 할 것인지, 비밀번호는 뭐가 좋을지. 그런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걸 반복하는 일이. 감수성이 한창 예민했을 중고등학교 시절엔 하나하나 다 이유를 만들어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생일, 아니면 내 생일. 몇 년 전 핸드폰 번호를 바꿀 땐 항상 한 해의 마지막처럼 살자는 의미로 1231을 하려고 했다. 이미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며칠 걸린다는 말에 다른 거로 했지만그런 식이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무뎌졌다. 기념일이며 생일이며 예전보다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고 비밀번호는 다 통일했다. 빨리 로그인하는 게 최고였다. 의미는 점점 멀어졌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의미를 두고 싶어졌다. 다시 그 시절처럼. 영화 제목인 일일 시호일,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라는 뜻처럼 오늘 하루의 좋은 점을 찾고 싶었다. 또 주어진 상황이 마지막인 것처럼 감사함을 느끼고 싶었다. 지금 차를 마시는 게 마지막인 것처럼 마시고 대접하라는 다케타 선생의 말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했다. 새 신발을 신고 처음으로 한 일이 내가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간 거라 다행이야, 라고.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을 다시 갈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고. 사소한 것 하나에 반응하는 내 모습이 좋았다. 글을 써서 얻은 운동화이니만큼 더 많이 보고 듣고 걷고 찾아가자고 다짐했다.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보이는 무언가를, 쉽사리 지나치기 쉬운 무언가를 보고 듣고 찾아서 쓰자고. 새 신발로 한 외출이 내 과거의 일부분을 되찾아 온 것 같았다.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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