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현실이 더 소설같아

2019. 2. 24. 23:55에세이 하루한편

 

할머니는 일반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위치는 연희동이었다. 금요일에 옮겼으니 3일째였다.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러고 보니 엄마랑 같이 버스 타고 어디 가는 거 엄청나게 오랜만이다.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그런가. 엄마는 말했다. 엄마, 내 고향은 연희동이지? 엄마는 그렇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내 고향으로 간다. 16년 만이었다. 병원은 정말 엄마 말대로 대로변에 떡하니 있었다. 할머니를 뵙고 인사를 했다. 더 빠질 살이 없었는데도 그새 더 마른 모습이었다. 살가죽이 정말 간신히 붙어있었다. 손과 팔, 얼굴에. 미음을 좀 드셨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물 좀 줘, 할머니는 가끔 그렇게 얘기했고 병간호를 해주시는 할머니가 수저로 물을 떠먹여 줬다. 그 뒤로 다섯 번 더 물 좀 줘, , . 목말라. 물을 찾았다. 금방 물을 먹어도 먹었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병원을 나선 뒤 엄마와 동네 구경을 했다. 사러가 마트도 다시 가고 내가 자주 놀던 놀이터도 갔다. 예전에 놀러 왔을 때 봤지만, 엄마에게 구경시켜주고 싶어서였다.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레 얘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시계를 잃어버렸던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놀이터 한쪽 귀퉁이에 있는 곰 동상이 아직도 있다며 웃었다. 어렸을 적 자주 놀았던 동네 언니에 대한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매일같이 놀던 동네 언니였다. 부모님들끼리도 가깝게 지냈던 사이였다. 내가 이사 간 뒤로 연락이 끊겼는데 혹시 아직도 이 동네에 사는지 궁금했다. 우리는 기억을 더듬어 함께 집을 찾았다. 엄마, 우리가 오랜만에 같이 외출한 게 같이 집을 찾으려고 그랬나 봐. 난 들뜬 마음으로 말했다. 두 번째 집까지 허탕을 치고 다른 골목으로 가는 중이었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집이라 여기가 아닌가, 한 군데만 더 가보자고 발걸음을 옮겼다.

세 번째 집과 점점 가까워질 때쯤 여기가 맞는 것 같아, 엄마, 여기인 것 같아! 나는 흥분해서 엄마 어깨를 퍽퍽 때리며 말했다. 엄마는 초인종을 누르고 누군가의 기척이 들릴 걸 기다렸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때 앞집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우리는 이 동네 사람도 아닌데 먼저 우리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엄마는 여기 혹시 ㅇㅇ네 사는데, 맞나요? 물었고 아저씨는 잘 모르겠지만 딸 둘과 아들 하나 산다고 했다. 언니의 형제 관계였다. ! 진짜 인가 봐! 문패에는 언니의 성과 같은 이름이 걸려있었다. 아마 언니의 아버지 성함 같았다.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 그럼 편지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방구에서 편지지와 볼펜을 사 지금 상황을 설명한 뒤 내 연락처를 남겼다. 반가운 마음에 집을 찾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면 미안하다고. 괜찮다면 연락 달라고. 놀이터에서 편지를 쓴 뒤 편지함에 넣고 손을 흔들었다. 이제 모든 건 운명에 맡기겠다는 마음으로. 어린 시절 추억을 괜히 들춰서 이도 저도 아닌 거로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은 추억으로 둬야 할 것을 현재로 끌어오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걱정과 설렘의 반복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동안 연락이 닿기를 바랐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니 시도는 해볼 수 있잖아. 잘한 거야.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문자가 한 통 왔다. 오랜만이라고, 잘 지내냐고.

세상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으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날 때가 있다고 생각하며 답장을 보냈다. 이 모든 게 나에게 일어난 일이며 고작 하루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니. 믿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