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아르바이트 6일 차-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2019. 3. 6. 23:19에세이 하루한편


대학교 구내서점인 만큼 일을 하며 신입생을 자주 상대한다. 미세먼지 가득한 나날이지만 넓은 운동장과 초록색 바닥 위에 세워진 농구코트를 보면 마음이 울렁거린다. 애늙은이 같은 소리 하기 싫은데. , 좋겠다. 좋을 때다.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이고, 좋겠다, 좋겠어. 운동장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서점에서 책을 사가는 학생들을 봐도 그렇다. 20대 초반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풋풋하고 어리숙하고 미숙한 과거. 처음으로 자취를 하고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환경을 봤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땐 내가 다 큰 줄 알았다. ,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면 지금도 좋은 시절인데. 나도 모르게 나이에 신경을 쓰게 된다. 내 나이엔 뭔가를 이뤄야 하고 뭔가를 가져야 하고. 쓸데없는 기준에 나를 비교하게 된다. 그럴 필요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주변의 시선에, 특히 부모님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

그러면 또다시 지금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땐가. 울렁이는 캠퍼스 풍경과 함께 서글픈 마음이 든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야. 뭐든 지금이 제일 행복할 때야. 마음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후회를 만들어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현재를 사랑할 줄 알아야 웃을 수 있다고. 적어도 서글프지 않을 순 있다고. ‘지금’ ‘현재와 같은 단어를 마음에 다시 한번 새긴다. 잘 자라나고 있어. 우연히 찾은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이 시 덕분에 잠시 쉴 수 있었다. 윤진화의 안부.

 

잘 지냈나요?

나는 아직도 봄이면서 무럭무럭 늙고 있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꽃이 지는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세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읊조립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 속에 가득한 혁명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당신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쪼록 건강하세요.

나도 당신처럼 시를 섬기며 살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