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7. 23:59ㆍ에세이 하루한편
미세먼지가 최악에서 나쁨 수준으로 떨어진 날이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해제됐다. 파란 하늘과 구름을 봤다. 아주 오랜만에. 어제와는 다른 날씨였다. 점심을 먹은 뒤 산책을 했다. 10분 남짓의 짧은 산책 햇볕도 쐬고 학교에서 돌보는 고양이들도 봤다. 탁한 회색빛 하늘만 보다가 푸른 하늘을 보니 기뻤다. 마음속에서 꿈틀꿈틀 뭔가가 움직였다. 봄. 봄이다. 봄이구나. 햇빛에 반사해 반짝이는 초록 나뭇잎들과 풀을 보니 들떴다. 떡볶이집 있잖아, 거기 앞에 매화인지 뭔지 하얗고 분홍색 꽃이 피었어. 어제 엄마는 자주 가던 산책로에 꽃이 핀 걸 봤다고 했다. 꽃이라니.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도 꽃은 피었다. 재촉하거나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성내거나 권유하지 않았는데도. 때가 되니 꽃을 피워냈다.
봄이 오고 있다. 진짜 오는구나. 그래서 그런지 조용히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을 꽃나무의 이야기가 그냥 들리지 않았다. 자연은 생생하다. 살아있다. 때가 되면 준비하고 있던 걸 슬쩍 보여준다. 과시하지 않고, 덤덤히. 그럼 나는 만개한 이름 모를 꽃을 보며, 색을 바꾸는 잎사귀를 보며, 바닥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계절이 바뀌어 가는 걸 느낄 뿐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을 보며. 기나긴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경칩이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 매캐한 공기 속에서도 꽃은 피었다. 제 일을 묵묵히 해 준 생명에게 고마울 뿐이다. 감격스러울 뿐이다.
묵묵히 제 일을 해나가는 자연에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계절 따라 날씨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는 나라는 사람은. 너무 부족해서 꽃을 피웠다는 말 한마디에 가슴이 뛴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저 감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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