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하루

2019. 3. 31. 22:14에세이 하루한편

  

오늘은 3월의 마지막 날이다. 331일 일요일. 윗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 뒤척인 것만 빼면 그럭저럭 자고 일어났다. 10시쯤 씻고 늦은 아침으로 사과 한 개를 먹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바로 <콜 미 바이 유어네임>. 영상미가 좋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 궁금했고, 무엇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어떻게 쓰였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OST만 따로 들었을 정도로 류이치 사카모토를 좋아한다.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적이고 나른했다. 보는 나까지 나른해질 정도였다. 이탈리아 북부라고 나오는 영화 배경지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어딜 가나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나무는 줄을 맞춰 서 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넘실대는 맑은 바다와 하늘은 가까이 있으며 언제든 갈 수 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이 있고, 살구와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있는 정원까지.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좋다.

책을 읽고 강이나 바다에 가고. 배가 고프면 마당에서 밥을 먹은 뒤 햇볕을 쬐고 수영을 하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음악을 듣고. 그렇게 여름을 보낸다면 어떨까. 그럼 책을 잔뜩 들고 갈 텐데. 초록색 큰 창으로 드나드는 사람을 보고 시내에 나갈 땐 자전거를 타기도 하겠지. , 난 여름을 참 좋아하는구나. 배경지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모습 그대로라면 꼭 가보고 싶다. 배경이 어딘지 까지 찾아봤다. 영화의 주 배경인 곳은 롬바르디아(Lombardy)의 크레마(Crema)이며, 주인공의 별장이 있는 곳은 모스카차노(Moscazzano)’라고 한다. 밀라노에서 43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살면서 한번쯤은 가보리라 다짐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낮잠을 잤다. 잠에서 막 깰 때는 내가 영화 속 별장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햇볕은 내리 쬐고 덥고, 습하고 물소리와 새소리, 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풍경이 떠올라 나른했다. 꿈을 꾼 것 같은 기분. 여운이 남았다.

그 뒤로 뭔가를 하지도, 딱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닌 시간을 보내다 어느새 밤이 됐다. 나른한 영화처럼 나른하게 보낸 날이었다

       

아름다운 집

주방

엘리오가 임시로 쓰던 방(여기가 더 좋다)

올리버의 방(원래는 엘리오의 방) / 사진 출처는 모두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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